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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독한건 굶주림…오늘도 도시락 배달 갑니다"

■'가톨릭 사랑평화의 집' 이끄는 허근 신부 인터뷰

"미사 중단 선포에 활동도 멈추자

쪽방촌 주민들 하루만에 문두드려

교구 설득해 열흘만에 지원재개

더 많은 이웃에 온기 전달되길"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가톨릭 사랑평화의집’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허근 신부가 도시락 나눔을 재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최성욱기자




“코로나로 대외활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제일 먼저 쪽방촌에서 굶고 있을 주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걱정과 두려움은 코로나가 아닌 굶주림입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가톨릭 사랑평화의 집’에서 만난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위원장 허근(세례명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저에게 미사 중단보다 더 안타까운 상황은 도시락 지원 중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천주교 16개 교구가 미사를 포함한 모든 대외활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봉사활동의 발까지 묶였던 지난 열흘 간은 그에게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간 시간이었다. 허 신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서울대교구는 지난 7일부터 도시락 나눔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허 신부가 이끄는 가톨릭 사랑평화의 집의 도시락 지원은 현재 서울대교구이 유일하게 허용한 대외활동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랑평화의집’에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전달할 도시락./사진제공=가톨릭 사랑평화의집


가톨릭 사랑평화의집은 서울역 일대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무료 도시락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단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2014년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제안해 문을 연 이 단체는 지난 5년간 소외계층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현재 정기적으로 가톨릭 사랑평화의 집의 도시락 지원을 받는 이는 4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서울대교구가 미사 중단을 선포하면서 허 신부는 이 곳의 운영도 중단해야만 했다. 종교계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시점에 교구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라 독자적으로 활동을 재개할 수도 없었다. 도시락 지원이 끊긴 지 하루 이틀 만에 배고픔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자, 이를 지켜보던 허 신부의 고민은 커졌다. 허 신 부는 “끼니 해결을 위해 닫힌 문 앞까지 찾아오는 이들과 함께 “도시락은 언제 다시 먹을 수 있냐”는 전화도 빗발쳤다. 이들에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를 구하는 것보다 당장 끼니 해결이 더 큰 문제였다”고 전했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의 한 쪽방촌을 찾은 허근 신부가 거동이 불편해 침상에 누워 있는 주민의 안부를 묻고 있다./최성욱기자


결국 허 신부는 교구의 문을 두드렸다. “도시락 하나로 두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나눔을 한 번만 중단해도 이들은 하루를 굶어야 한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먹지도 못해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라는 허 신부의 설명을 들은 서울대교구는 열흘 만에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 나눔만은 재개하기로 했다.

이날 염 추기경은 담화문을 통해 “11일 이후에도 미사와 모임을 재개하기가 어렵다”고 미사 중단 연장을 발표하면서도 사제와 신자들에게는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허 신부는 “한국 천주교가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지만 미사 재개보다는 당장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욱 시급한 과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 재개를 결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종교활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진 가운데 혹시라도 도시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사회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락 나눔에는 자원봉사자들 대신 신부, 수녀 등 천주교 성직자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위생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종교계가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상황도 결국 서로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상황을 일깨우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셨던 것처럼 종교 간 갈등과 혐오, 비난을 넘어서 모든 신앙인들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온기를 전달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 주시길 바랍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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