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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하나에 1,000억 드는데...정부·市 '총선용 空約'에 난감

[서울 후보 85% 묻지마 지하철 공약 ]

다 수용하면 수조 필요...재원조달 등 실현 가능성 없어

상대편 공약 베끼기 넘어 "내가 원조" 웃지 못할 촌극

공약 심판해야 할 유권자가 포퓰리즘 부추기는 사례도





“당선되고 21대 국회가 열리면 관계부처·서울시 등과 협의해 구체적인 사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서울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A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공약으로 내세운 지역구 내 지하철역 신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재원 마련 방안, 정부와의 협의 상황 등 세부적인 내용을 물었지만 ‘당선되면 추진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대답만이 돌아왔다. ‘얼마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하느냐’는 질문에도 답이 없었다.

4·15총선에서도 재원 마련 등 실현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묻지 마 개발 공약’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은 전국에서 교통 인프라가 가장 잘 발달된 지역인데도 총선 후보들은 “주민들이 교통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며 너도나도 역을 새로 짓거나 노선을 새로 놓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공약의 주목도가 높다 보니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약속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예산·협의 없어도 ‘일단 걸고 보자’=서울에서 철도 개발 관련 공약을 내건 85명의 후보가 새로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역은 32개다. 한발 더 나아가 노선 확장, 지선 연장 등 신규로 만들겠다는 노선도 6개나 된다. 서울 송파병의 김근식 미래통합당 후보는 당선 시 마천사거리역·천마산역·문정중역 등 3개 역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 노선 연장을 통해 신설을 이뤄내겠다고 했지만 어떤 노선에 포함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상대 후보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호선 연장을 통해 오륜사거리역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맞섰다. 이 지역 현역 의원인 남 후보는 국토교통부에 역 신설 건의를 하는 등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사업 진척은 거의 없는 상태다.

서초을에 출마한 박경미 민주당 후보와 박성중 통합당 후보는 모두 위례과천선에 포이사거리역·선암IC역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박성중 후보는 여기에 매헌~내곡~복정을 잇는 지선을 별도로 추진하겠다는 약속도 더했다. 강남갑의 두 후보(김성곤·태구민)는 위례신사선 청담사거리역을 지어주겠다고 나섰다. 동작을의 나경원 통합당 후보는 지역구 내를 지나는 7호선과 2호선을 연결하는 신규 노선(서초지선)을 만들겠다고 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훌륭한 공약 소재다. 노선이 지나는 지역의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기 착공”을 약속하고 있다.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 후보들은 “노선을 연장해 새롭게 역을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도봉을의 김선동 통합당 후보는 GTX-C 노선에 도봉산역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강동갑의 진선미 민주당 후보는 “GTX-D 노선을 강동에 유치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2호선 지상 노선이 지나는 성동·광진·송파구 후보들은 ‘지상 노선의 지하화’를 이뤄내겠다고 했다.



◇재원만 수조원…“현실성 낮은 공약 남발” 지적=문제는 이처럼 남발되는 공약들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서울의 지하철역은 현재 300여개로, 후보들이 내건 공약이 다 이뤄지면 10% 이상 규모가 커지게 된다. 지하철역 하나를 지을 때 800억~1,000억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하철역 신설에만 3조원 이상의 예산이 든다. 노선당 ‘조’ 단위 가깝게 드는 신규 노선 사업은 말할 것도 없다.

매번 되풀이되는 공약 남발에 정부와 서울시는 난감한 상황이다. 국회의원이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라 검토는 해야 하지만 사업성이 낮거나 다른 이유 등으로 모두 들어주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검토는 하지만 서울의 경우 지하철역을 대폭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상당수 후보가 내건 지상 지하철의 지하화 구상도 “경제성, 재원 마련 문제 등을 감안하면 당장 추진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공약은 각 후보들이 ‘베끼기’까지 하면서 선거 때마다 계속 늘어나는 모습이다. 개발 공약 중에서도 지역 유권자들의 주목도가 특히 높은 탓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후보는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신구로선 노선 신설, 1호선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건 이인영 민주당 후보(구로갑)는 “지난 2008년 총선에 나서면서 20년 앞을 내다보며 내세웠던 공약”이라며 “이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 정치인들이 공약하고 있다”고 했다.

말뿐인 공약을 심판해야 할 유권자들이 오히려 포퓰리즘 경쟁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부진한 지역 숙원사업을 총선을 통해 이뤄보겠다며 공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희망공약’을 접수한 결과 △남양주시 6호선 연장 추진 △ 남양주시 9호선 연장 추진 △인천공항행 GTX-D 노선 신설 등 철도 공약 제안이 다수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성 없는 공약 남발을 우려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현실 가능성은 거의 없는 공약들”이라며 “재정 부담도 문제지만 지하철역을 마구잡이로 늘리면 이동시간이 길어지는 등 전체 교통망의 효율적 측면에서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하철의 경우 지역 주민 대부분이 관심 갖는 사안이다 보니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동영·김상용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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