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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원짜리 ETN이 650원에 거래...폭탄 껴안은 '원유개미'들

[원유파생상품 휴지조각 되나]

국제유가 50% 이상 떨어지면

4개 레버리지 종목 전액 손실

유동성 공급 증권사도 '포기'

자진 상폐 등 제도 정비 필요

21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원유 저장탱크들이 대부분 가득 채워져 있다. 아직 비어 있는 탱크들도 이미 예약이 완료돼 저장 공간이 부족한 원유의 추가 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쿠싱=로이터연합뉴스




국제유가의 유례없는 급락세 속에서 원유상품에 대거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가 실제 가치 대비 수십~수백%가량 고평가된 가격에도 묻지 마 매매가 이뤄졌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국제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전액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큰 상황이다.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날 새벽 현지에서 43.4%(8.86달러) 하락한 배럴당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전일 종가 대비 68% 떨어지기도 했다. 국내 상장돼 있는 2배짜리 유가 레버리지 ETN 상품의 경우 국제선물 가격이 -50%를 넘어가는 순간 100% 손실로 청산된다. 그나마 종가에 반등하며 휴지 조각을 면했지만 언제든지 유가가 급락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같이 투기성이 강한 유가 상품임에도 이날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는 뜨거웠다. 게다가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가격에 ‘묻지 마’ 매수 광풍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은 전일보다 28.18% 하락한 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이 가격은 정상가치를 고려하면 9배나 비싼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이 상품이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원유선물을 토대로 계산한 정당한 가치는 주당 63원22전에 불과하다. 실제가치에서 매매가격을 뺀 ‘괴리율’은 그동안 50~60%선에서 고공행진을 해왔지만 이날 극단으로 치달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이성을 잃은 듯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에셋레버리지원유선물혼합ETN도 전일 대비 35.2% 하락한 1,600원에 거래를 마쳤으나 괴리율은 231%에 달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482원으로 장을 마쳤어야 하는 상품이다.

원유 ETF의 경우는 가격제한폭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높게 매매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가격 제한폭인 30%까지 떨어졌으나 이는 유가 하락 폭인 약 40%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에 종가 기준 괴리율이 32.24%로 벌어졌고 한국거래소는 23일부터 이 종목에 대해 단일가 매매를 적용하기로 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성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조성자들인 증권사들은 사실상 손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거래소가 ‘문을 닫는’ 조치를 취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전일만 해도 1억주 이상의 자체 보유 물량을 쏟아내며 괴리율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으나 이날은 백기를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ETN은 1일 거래량이 1억주가 넘는데 현재 신한금투가 보유한 물량은 9,700만주밖에 안 된다”며 “가격 정상화를 위해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거래소는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을 23~24일 거래 정지시키고 오는 27일 단일가매매 방식으로 거래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과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 4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22일 기준으로 4,345억원이다. 거래가 정지된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이 상품들은 휴지 조각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당국과 거래소·운용사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에게 연일 투자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0달러선인 국제유가가 5달러로 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며 “한번 전액 손실이 발생하면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고지하는데도 도통 투자자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혼탁한 원유 상품 시장에 대한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외처럼 운용사나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상장폐지(조기상환)를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최근 운용사들이 유가 ETF 등을 자체적으로 상장폐지를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방조하는 ‘미필적 고의’가 벌어지지 않게끔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진·박경훈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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