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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파랑 숫자들과의 전쟁

스코어보드 관리 1인칭 골프 체험

숫자판 교체 작업은 신속 정확해야

스코어 색깔 구분 마스터스서 유래

기호와 약어 알고보면 더 많은 정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이 열린 제주 핀크스 골프클럽의 18번 홀 그린과 대형 스코어보드. 김세영 기자




스코어가 요동치면 손과 발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골프대회에서 경기 운영을 맡고 있는 인원 중에서도 스코어보드를 담당하는 스태프가 그들이다. 선수들의 한 샷 한 샷에 따라 숫자를 바꿔야 하는 스코어보드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은 해마다 가을의 명승부가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치러진 올해 대회에서는 박현경이 9차례 이어지던 준우승 징크스를 깨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제주 서귀포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이 대회 기간에 갤러리의 이목이 가장 집중되는 스코어보드 관리 체험에 나섰다.

사실 체험에 앞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체험을 하기로 한 이틀이 ‘무빙 데이’로 불리는 대회 셋째 날과 우승자가 탄생하는 최종일이라는 점이었다. 무빙 데이는 정식 골프 용어는 아니다. 대회 셋째 날 순위 변동이 심해 ‘이삿날’을 의미하는 무빙 데이를 언론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4라운드로 열리는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컷이 결정된 후 열리는 3라운드 때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쳐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주요 선수의 이름과 스코어를 바꿔야 하는 스코어보드 관리 업무의 강도가 가장 높은 날이다. 또한 최종일은 갤러리가 가장 많이 몰리고 우승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스코어보드에 이목이 집중돼 한층 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아침 일찍 골프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에 도착해 우선 대회 모자와 스태프 점퍼를 지급받은 뒤 대형 스코어보드가 설치된 18번 홀 그린으로 향했다. 서귀포 앞바다와 산방산을 배경으로 대형 스코어보드가 엄청난 크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대형 스코어보드는 가로 6m, 세로 4.5m 정도의 크기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대회 주최사의 요구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바닥에 숫자판을 미리 깔아 놓는 건 재빨리 숫자를 찾기 위해서다.


두 종류의 고정식 대형 스코어보드

스코어보드는 크게 고정과 이동식 두 가지로 나뉜다. 이동 스코어보드는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해당 조 선수들의 성적을 갤러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챔피언 조(최종일)를 비롯해 주요 3~4개 조를 커버한다. 고정은 18번 홀 그린 옆의 대형 스코어보드와 관람객의 왕래가 잦은 곳에 설치하는 종합 스코어보드가 있다. 여기에 코스 내에 중형 스코어보드 2개 정도를 설치한다.

체험에 앞서 이번 대회 마셜 및 스코어보드 관리 실무를 맡은 운영업체 엠세트의 김두남 차장을 만났다. 그에게 30분간의 교육을 받은 뒤 곧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리더보드(Leader Board)라고도 불리는 대형 스코어보드에는 상위 9명의 선수 이름과 진행 홀, 당일 성적, 그리고 합산 스코어를 나타내는 칸이 있다.

총 4명의 인원이 이곳에 배치됐다. 그 중 1명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실시간 스코어를 확인하고 나머지 3명은 이름과 스코어, 진행 홀 등을 표시하는 대형 숫자판을 갈아 끼우는 역할을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선수들이 18번 홀 그린에 올라왔을 때는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숫자판과 문자판은 스코어보드 뒤편에 준비돼 있었다. 컷을 통과한 선수 67명의 이름과 수많은 숫자판이 커다란 나무 상자 안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스코어보드에 보이는 건 단지 상위 9명의 이름과 나머지 정보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스태프들이 주요 선수의 이름판과 자주 사용되는 숫자를 바닥 여기저기에 쭉 깔아놓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미리 어느 정도 분류를 해놔야 재빠르게 갈아 끼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지 김세영 기자와 정문영 기자가 숫자판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권욱 기자


방금 갈아 끼웠는데 또?

3라운드가 열린 날 핀크스 골프클럽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짙푸른 잔디 사이 곳곳에 핀 억새로 만추의 감성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성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선수가 그린에 왔는지 확인도 해야 했고 성적에 맞게 숫자판을 바로바로 바꿔줘야 했기 때문이다. 스코어보드에 있는 위아래 홈에 숫자판을 살짝 구부린 다음 끼워 넣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숫자판이 크기 때문에 다루기 힘든 데다 끼우는 홈의 수평이 살짝 뒤틀린 부분도 있어서였다. 자칫 홈에 손이 끼면서 베일 수도 있어 조심해야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용 장갑을 착용했는데 손에 익지 않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선수들의 순위가 뒤바뀌는 때였다. 단순히 성적만 바뀔 때는 숫자판만 갈아 끼우면 되지만 순위가 요동치면 이름부터 몽땅 옮겨야 했다. 한바탕 난리를 친 끝에 잠시 쉬나 싶었는데 또 다시 바뀔 때면 한숨이 나왔다. 늦가을 바람이 선선했지만 금세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최근에는 대형 스코어보드가 LED로 제작돼 이런 수고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LED 스코어보드는 300인치에서 400인치 크기로 제작돼 스코어뿐 아니라 광고, 중계 화면, 선수 프로필 등 다양한 영상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또 투입 인력도 컴퓨터를 통해 화면 전환을 도와줄 1~2명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수작업 스코어보드를 고수하는 대회도 많다. 선수들이 가장 출전하고 싶은 대회 중 첫 손에 꼽는 ‘명인열전’ 마스터스도 작업자들이 일일이 숫자판을 갈아 끼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수작업 스코어보드의 아날로그 감성이 여전히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다.

종합 스코어보드에는 모든 선수들의 성적을 반영한다.


눈 빠질 뻔한 종합 스코어보드

18번 홀 대형 스코어보드 체험을 끝낸 뒤 선수와 갤러리로 북적이는 연습 그린으로 향했다. 갤러리 플라자에서 1번과 10번 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연습 그린은 핀크스에서 갤러리의 왕래가 가장 잦은 곳이다. 연습 그린 앞에 설치된 종합 스코어보드는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작은 숫자들로 한창 꾸며지고 있는 중이었다. 숫자판 뒤에 작은 자석이 있어 철판에 착 붙이는 방식이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숫자판을 체험하고 온 뒤라 한 손으로 작은 숫자를 붙이는 일쯤은 별 게 아니라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던가,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예상과 많이 달랐다. 선두권 선수의 성적만 보여주는 대형 스코어보드와 달리 종합 스코어보드는 컷을 통과한 67명 전원의 스코어를 라이브로 표시해야 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KLPGA 앱에서 직접 스코어를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해서 손과 발, 눈, 머리를 모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18번 스코어보드와 같은 4명의 스태프가 종합 스코어보드에 투입됐지만 정신없이 바쁜 건 비슷했다. 한 손에 든 스마트폰의 앱으로 선수들의 성적을 확인하고 한 손으로는 자석으로 된 숫자 조각을 스코어보드에 붙였다.

언더파와 오버파를 색깔로 구분하는 건 마스터스서 유래했다. Getty Images


언더파, 오버파 색깔 구분은 마스터스서 유례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의 성적은 언더파는 빨간색, 파는 녹색, 오버파는 파란색으로 구분했다. 언더파와 오버파를 색깔로 구분하는 건 마스터스에서 비롯됐다. 마스터스는 1947년부터 언더파는 빨간색, 파는 검은색, 오버파는 녹색으로 표시했다.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가 선수들의 성적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군 전역 후 복학 전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왔다는 오준호 씨는 “보드가 흰색이라서 맑은 날에는 눈이 부신다”며 “처음에는 숫자나 색깔 등이 헷갈린 데다 전날까지는 모든 참가 선수들 성적을 표시해야 돼서 더욱 힘들었다. 오늘은 조금 편한 편”이라고 했다. 이어 “남들은 돈 내고 오는데 골프대회 보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니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준다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 엠세트의 김두남 차장은 “해가 긴 여름에는 남자 대회는 140여 명, 여자 대회는 130여 명까지 출전 선수가 늘기 때문에 종합 스코어보드에도 그만큼 스태프를 더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중형 스코어보드는 자석 막대를 이용해 디지털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한다.




중형 보드 스태프는 ‘대민업무’ 처리?

최종일에도 잠시 시간을 내 스코어보드 일을 도왔다. 그 전에 중형 스코어보드는 어떻게 운영 되는지 둘러봤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9번과 18번 홀 티잉 구역 뒤쪽 2곳에 운영했다. 성인 남자보다 작은 높이의 중형 보드는 대형에 비하면 사실 ‘미니’ 사이즈였다. 스코어는 자석 막대를 이용해 디지털 방식으로 표시했다. 전자시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보드에 디지털 숫자가 인쇄돼 있어 그에 맞춰 해당 숫자들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대신 중형 스코어보드에서는 해야 할 ‘잡무’들이 있었다. 티잉 구역과 불과 50여 m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큰소리로 대화를 하면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대회 이벤트 등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도 답변을 해줘야 하는 등 ‘대민업무’도 처리해야 했다. 한 관람객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했다. “지금 공동 선두가 한 명 늘어 4명인데요.”

일터 뒤 그들만의 비밀 공간

이날 챔피언 조는 오전 10시 35분에 출발했다. 점심 무렵까지는 크게 바쁜 일이 없었다. 스코어보드 뒤편에는 그들만의 비밀 공간이 있었다. 그곳 나무 아래에 놓인 4개의 의자에 앉아 잠깐씩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반 관중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편하게 쉬기에 제격이었다. 이곳에서 스태프들은 음료나 간식, 도시락 등도 먹는다. 먹는 건 그렇다 치고 혹시 가벼운 ‘볼 일’은 나무 사이 수풀에 처리할까? 한 스태프는 “간혹 샛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어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멀리 떨어진 갤러리 화장실에 가서 해결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갈 순 없으니 순번을 정해서 한 명씩 다녀온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18번 홀 그린 주변에는 서서히 긴장감이 치솟았고 대형 스코어보드 일도 분주해졌다. 특히 전날 선두권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던 방신실이 무섭게 타수를 줄이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면서 한바탕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린 주변에 모인 구름 갤러리들의 시선이 대형 스코어보드에 자주 쏠리기 때문에 라이브 스코어를 정확하고 빠르게 반영하는 게 관건이었다. 스코어보드 앞에서 선수들의 성적을 앱으로 확인하는 조장의 지시에 따라 나머지 인원들은 대형 보드를 오르내리며 숫자들과의 전쟁을 벌였다. 바닥 여기저기에 숫자판을 깔아놓았는데 밟으면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실제로 스태프 한 명이 숫자판을 들고 올라가다 다른 판을 밟으면서 넘어질 뻔했다.

막판에는 숫자 4가 적힌 판이 거의 소진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일 4언더파를 친 선수와 합계 성적이 4언더파인 선수가 많았던 탓이었다. 다행히 더 이상 4가 필요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문제가 벌어지진 않았다.

박현경과 이소영이 합계 8언더파 동타로 연장전이 결정된 가운데 마지막 조가 들어왔다. 그런데 상위 9명 안에 끼지 못했던 마지막 조의 임진희가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공동 4위로 뛰어오른 게 아닌가. 그건 임진희를 중간에 끼워 넣고 나머지 선수들의 이름과 성적도 모두 이동시키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막판 그의 버디 하나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진수(왼쪽 아래부터 사선방향 위로), 장민준, 김성훈, 부용호.


‘독재자’를 포함한 4명의 알바생

그렇게 이틀간의 18번 홀 대형 스코어보드 업무가 끝이 났다. ‘조장’을 맡았던 대학생 부용호 씨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스포츠 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 이런 행사가 있으면 꼭 참가하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직접 여러 가지를 체험해 보고 싶거든요. KLPGA 투어 대회 공식 기록원도 몇 번 해봤어요. 대형 스코어보드 업무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순위가 자주 바뀔 때는 조금 힘들긴 해도 선수 가까이에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뿌듯했어요.”

부 씨는 조원들을 한쪽으로 불러 어깨동무를 하며 원을 그린 뒤 조용히 파이팅을 외쳤다. 다른 부원들은 “조장이 독재자였다”며 웃었다. 4명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들은 이번 기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꼭 넣어달라고 했다. 스물네 살 부용호와 그의 친구인 김성훈, 그리고 열아홉으로 고등학교 동창인 한진수와 장민준. 이들 4명이 2023년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18번 홀 대형 스코어보드를 책임졌다.

순위표의 약어와 기호들 무슨 의미야?


골프 대회 순위표를 보면 이름이나 순위 옆에 여러 가지 기호나 약어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대개 그 의미를 알고 있지만 간혹 무슨 의미인지 헷갈리는 것도 있다. 순위표에 사용되는 약어와 기호를 정리했다.

T=Tie의 약자로 공동 순위를 의미한다.

*=보통 10번 홀 출발 선수 이름 뒤에 ‘*’ 표시를 한다. 당연히 이름 뒤에 이런 표시가 없다면 1번 홀 출발 선수다.

WD=Withdrawn의 약자로 경기 시작 전 기권한 선수를 말한다.

RTD=Retired의 약자로 경기 중 기권한 선수를 의미한다.

DQ=Disqualified의 약자로 경기 중 실격 된 선수를 표기할 때 쓴다.

DNS=Did Not Show의 약자로 불참을 의미한다.

MC=Missed Cut의 약자로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걸 뜻한다.

MDF=Made Cut, Did Not Finish의 약자로 컷은 통과했지만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2라운드 컷 이후 다시 3라운드 컷이 적용되는 대회에서 볼 수 있다.

↑↓=직전 라운드 대비 순위 변화를 의미한다.

(a)=아마추어 선수라는 표시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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