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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자동화는 勞에게도 기회...일자리 경쟁력 높아질 것"
경제 · 금융 정책 2019.08.05 17:31:12“자동화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자리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입니다.” 독일 금속노조인 이게메탈(IG Metall)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노조 단체다. 1만4,000여개 기업, 약 230만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다임러·아우디·폭스바겐 같은 독일 완성차 업계를 포함해 총 30개 영역의 기업들이 속해 있고 155개 지역 사무소가 독일 전역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독일 정부가 ‘인더스트리4.0’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노동4.0’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게메탈에서 ‘노동의 미래(Future of work)’ 분과를 총괄하고 있는 데트레프 게르스트(사진) 박사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자동화·디지털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자동화를 통해 기업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면 이는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게르스트 박사는 “나아가 노동자 개개인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동화 흐름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동화=일자리 급감’이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기술 혁명 시대를 맞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양대 노총이 ‘귀족 노조’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투쟁에 몰두하는 사이 독일 금속노조는 미래 노동시장 변화의 대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게르스트 박사는 “실제 현장에 가보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다”면서 “노조로서는 시간을 벌었고 그 기간에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더스트리4.0’ 정책을 통해 가장 선제적으로 자동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제조 강국 독일이지만 오히려 현장에서는 속도가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그것도 노조에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산업 현장의 자동화·로봇화에 맞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게메탈은 ‘고숙련 기술자 중심으로 고용 시장이 바뀔 것’이라는 주요 연구기관 전망에 동의했다. 미래 노동시장은 중간 숙련 노동자가 사라지고 저숙련과 고숙련으로 인력 수요가 양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게르스트 박사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면서 “단순 노동 일자리도 살아남기는 하겠지만 전문적이고 창의적 행위를 해야 하는 일자리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투쟁에 매몰돼 있는 우리나라 노조와 달리 이게메탈의 목적은 철저히 노동자의 권익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게르스트 박사는 “자동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있다면 교육을 시켜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정부·사용자 측과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기업의 일이지만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프랑크푸르트=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창간기획] "4차 혁명시대 노동자는 적기 재교육 받아야 생존"
경제 · 금융 정책 2019.08.05 17:28:37한국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접하기 어려운 뉴스가 최근 네덜란드에서 나왔다. 네덜란드 1·4분기 고용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치인데 ‘빈 일자리’가 27만7,000개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빈 일자리’는 말 그대로 사람을 구하지 못한 일자리다.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정치·경제의 중심지 헤이그에서 만난 톤 숀메커(사진) 네덜란드경영자연합(VNO NCW) 국제업무 담당 본부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해석했다. “자동화·디지털화에 따라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하지만 전제적인 고용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산업이 자동화·디지털화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일자리 교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이런 부분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줘 실업률(3.3%·5월 기준)이 유럽연합(EU) 평균(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드는 바로 지금이 미래 고용시장에서 노동자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숀메커 본부장은 “일부 노동자들이 생산현장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는다고 항의하는데 우리(사용자 측)는 새로운 기술을 익혀 숙련도를 높이고 재취업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제때 재교육을 받아야 잉여 인력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부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흐름이 닥쳤는데도 일자리를 잃을 수 없다며 투쟁하기보다 노동자 스스로 고숙련자로 거듭나는 데 매진하라는 뜻이다. 네덜란드경영자연합은 우리나라로 치면 사용자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 1982년 노조와 역사적인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노조를 설득해 개별 근로자들의 경쟁력을 매년 평가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 대신 노조는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등을 사용자 측이 허용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네덜란드경영자연합은 받아들였다. 숀메커 본부장은 “노동자 평가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노조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면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우리도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과잉보호를 완화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식으로 서로가 하나씩 양보를 반복하며 협상을 진전시킨 것이다. 네덜란드경영자연합이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낮출 것을 정부에 요구한 이유는 간단하다.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숀메커 본부장은 미래에는 단순 반복 업무보다 특정 기술에 능숙한 고숙련 노동자가 각광 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미래에는 지금 같은 일반적인 노동 기술이 아니라 개인에 특화된 노동력이 요구될 것”이라면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대체 불가한 ‘너만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헤이그=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창간기획] "자동화 적응 못하면 낙오"...IT 평생교육 뿌리내려야 살아남는다
산업 IT 2019.08.05 17:10:05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 5월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보다 한 단계 떨어진 28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IMD는 “과학 분야는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와 연구인력 확대 등으로 개선됐지만 기술 및 교육 분야의 순위가 하락했다”며 교육 분야의 순위를 30위로 전년 대비 다섯 계단이나 하락시켰다. 특히 IMD는 대학 교육의 사회수요 적합성을 묻는 설문에서 지난해 49위였던 순위가 올해 55위로, 외국어 능력의 기업수요 적합성의 경우 같은 기간 33위에서 44위로 추락했다고 원인을 지목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라며 “인공지능(AI)의 도입 등 노동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기존 교육 시스템을 원점에서 다시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로봇 자동화와 플랫폼 경제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훈련 시스템은 수요자 맞춤보다는 공급자 위주 지원책에 머무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기업이 손을 맞잡고 재직자 재교육부터 은퇴 후 전직교육에 이르기까지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평생학습 체계를 도입해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이나 인생 이모작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기존 공교육 시스템이 민간에서 원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민간기업에서마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교육훈련에서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로봇의 도입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IT 분야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교육훈련에 일찌감치 나섰다. 유럽연합(EU)에서 마련된 재원과 주정부에서 나온 자금을 매칭해 각 주의 주력산업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훈련을 시작했다. 베케 랑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경제부 총괄은 “4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산업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에게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산업현장에 자동화가 도입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로봇 등 새롭게 도입된 장비를 다루고 생산라인을 운영할 줄 아는 기술이기 때문에 IT 분야에 대한 노동자 재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랑 총괄은 주정부가 지급한 돈으로 지역 상공회의소에서 컨설팅과 교육훈련을 진행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영국 역시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무인화로 사라질 위험이 큰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과 기술교육 등을 지원하는 ‘국가 재교육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위해 1억파운드(약 1,460억원) 규모의 예산을 배정했다. 글로벌 기업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쇼핑 업체인 아마존도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앞으로 6년간 7억달러(약 8,000억원)를 투입해 미국 직원 10만명에게 직접 재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마존은 AI와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물류 처리나 상품 배송, 일반관리 직군 인력을 대상으로 IT 분야 교육에 나설 예정이다. 또 직원들의 전직을 돕기 위해 간호나 항공기 정비 등 비IT 분야의 자격증이나 학위를 따는 직원들에게 학비의 95%를 지원하는 ‘아마존 커리어 초이스’ 프로그램도 도입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화로 인해 비숙련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정부와 기업·노동조합 사이에 대응방안도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한 형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25~26%가 자동화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 키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직업능력개발 담당 과장은 “한국은 젊은 세대의 경우 IT에 대한 교육 수준이 구세대와 비교해서는 높지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IT 스킬이 없는 구세대는 저임금·비숙련 노동자에 계속해서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기술 진보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계는 고용 보호에 치중해 노동 경직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며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들의 한국 엑소더스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평생 교육훈련 시스템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말 그대로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
[창간기획] 獨 노동자들 로봇 조작법 등 배워 고급 숙련자로 재탄생
경제 · 금융 정책 2019.08.05 17:08:33독일을 대표하는 산업지역인 뒤셀도르프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보훔(Bochum). 한때 석탄가루 흩날리던 탄광지역이지만 지금은 기계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시내에서 다시 차로 10여분만 가면 고만고만한 주택가 한편에 지상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훔대가 운영하는 러닝팩토리다. 쿠카·ABB 등 첨단 로봇과 시뮬레이션 장비들이 구비된 이곳은 노동자를 교육해 고급숙련자로 재탄생시킨다. 기계공학 박사이자 러닝팩토리 강사인 헨닝 오베르크씨는 “지난해 티센크루프·보쉬·다임러 등 유수 기업의 현장 노동자 1,800여명이 다녀갔다”면서 “자동화·디지털화 시대에 노동자들이 로봇 조작 기술을 교육받고 실습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보훔대 러닝팩토리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노동시장의 급변을 독일 노사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대비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럽 최대 노동조합인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와 연계해 운영되는 러닝팩토리에서는 실제 생산현장에 배치된 로봇 조작법, 데이터 처리 기술을 배운다. 경영자를 대상으로 컨설팅도 제공한다. 40명 단체 기준으로 3일짜리 프로그램 비용이 1만2,000유로(약 1,577만원)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기업이 공동 부담한다. 특이한 점은 교육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과학 분야 강사가 교육에 반드시 참여한다. 오베르크씨는 “인간이 기술 발전의 중심에 있고 기술은 인간 주변에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모르면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이처럼 노동자 재교육에 적극 나서는 것은 자동화·디지털화 시대를 노동자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독일경제연구소(IW)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독일 기업의 85%가 직원 대상 직업 재교육을 실시했고 여기에 176억유로(약 23조원)를 쏟아부었다. 보훔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부의 베케 랑 총괄은 “4차 산업혁명이 더 확대됨에 따라 고도화된 기술을 보유한 숙련공이 현장에서 필요로 되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에 노동자와 기업가들이 혼돈 없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훔=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창간기획] "사일로 조직 깨니 생산성 30% 올라"
경제 · 금융 정책 2019.08.05 17:07:41네덜란드 최대 금융사 ING는 지난 2015년 창사 이래 가장 큰 모험을 감행했다. 기존 조직체계를 송두리째 뜯어고쳐 ‘애자일(Agile·기민한)’ 체계를 도입했다. △전산(delivery) △세일즈(sales) △서비스(service) △업무지원(support) 4개의 업무 골격만 유지한 채 각 분야에 소속된 직원을 섞어 9~10명의 작은 조직 단위로 재편했다. ‘헤쳐 모여’ 식이었다. 전 세계 42개국, 5만3,000명의 ING 임직원이 애자일 체계를 적용받고 있다. 이 작업을 총괄한 파얌 드자위단(사진) ING 원 애자일 워킹(One Agile Working) 글로벌 총괄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ING 본사에서 만났다. 드자위단 총괄은 “업무별로 부서가 나뉘어 칸막이가 처져 있는 ‘사일로’ 조직체계를 부숴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애자일 체계는 전문화된 수평적 팀 조직을 핵심으로 한다. 예컨대 대출·보험·예금으로 나뉘어 있는 부서 형태를 각 부서에서 1명씩을 모아 새로운 팀을 만드는 식이다. 고객 1명을 1개 팀이 맡아 복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효율성도 올라갔다. 그는 “애자일 체계 도입 전에는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를 1년에 서너 차례밖에 못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까지 가능해졌다”면서 “시장의 니즈에 대응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고 말했다. 전체 직원의 60%가 앱 관리에 참여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애자일 체계 도입으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성이 30% 정도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ING가 이처럼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동력은 글로벌화·디지털화·자동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도래에 있다. 자동화로 오프라인 지점이 폐쇄되고 글로벌화로 은행 업무에서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그는 “ING는 하나의 금융사지만 글로벌 전역에 걸쳐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애자일 방식으로 하면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일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암스테르담=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정규직 vs 비정규직 이분법 깨고 노동 유연성 높여야"
산업 기업 2019.08.05 16:41:42“한국은 ‘정규직 VS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노동자를 같은 잣대로 다루는 방식으로 변해야 합니다. 정규직은 한 직장에 머무는 반면 정규직이 아닌 이들은 2년마다 직업을 바꾸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정규직 VS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분을 깨고 성과를 기반으로 모든 노동자를 똑같이 다뤄야 합니다.” 랜들 존스(64·사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담당관은 프랑스 파리 16구에 있는 OECD 본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들에 의해 경제가 움직이고 근로자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한 경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자들이 (정년이 보장된) 직업을 가지고 턱없이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을 경우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대응하기 어렵다”며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존스 전 담당관은 한국 경제에 정통한 해외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1992년 문민정부가 OECD 가입 계획을 밝힌 직후부터 한국을 담당해 약 24년간 한국 담당관으로 활동했다. 존스 전 담당관은 디지털화(digitalization) 등으로 산업이 변하는 추세에 발맞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0년 후에는 지금 있는 환경이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질 텐데 축소되는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매년 7%씩 성장해 사람들이 평생 근무할 수 있던 과거 고도 성장기와는 달리 지금은 축소하는 업종과 성장하는 업종이 상존하는 만큼 유연성을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하며 노동 유연성 확대와 복지 시스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짚었다. 존스 전 담당관은 “한국에서 정규직은 해고가 어렵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보호도 받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해고도 쉽고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마저 없다”면서 “누군가가 실업상태가 됐을 때 교육은 물론 다른 경제적인 혜택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회사가 직원을 고용·해고하는 것이 자유로워 노동 유연성이 굉장히 높지만 동시에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이나 재교육 등의 복지를 제공하는 덴마크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또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재취업을 위한 교육 시스템은 필수라고도 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건넸다. 존스 전 담당관은 “한국은 피사(PISA) 시험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는데다 대학 학위를 가진 젊은 층의 비율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며 “좋은 성과를 낼 강점을 충분히 가진 만큼 앞으로도 좋은 뼈대를 만들면서 교육과 연구개발(R&D), 자본투자를 통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6월 한국 담당관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달 말에 OECD를 떠나 다음달부터 미국 워싱턴 컬럼비아대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
[창간기획] 경제발목 두번 잡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사회 사회일반 2019.08.05 16:39:47대기업과 공기업, 공공기관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20여년째 깨지기는커녕 날로 굳건해지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자 기업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간접고용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 그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이중구조는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려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를 타파하려면 일부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내려놓기’ 시도를 비롯해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를 보면 공시 의무가 있는 30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정규직은 지난 2014년 274만명에서 2019년 299만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비정규직은 2014년 162만명에서 2018년 194만명으로 증가하다가 2019년 187만명으로 감소했다. 비정규직의 비율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증가하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39.8%, 38.5%로 감소했다. 비정규직의 수나 비율은 감소했지만 임금 수준 차이는 여전히 크다. 고용형태별 시간당 임금총액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8.3%에 그쳤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혹은 이중구조가 고착화하면 노동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경제의 활력에도 좋지 않다. 최충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동생산성’ 논문을 보면 임시직 노동자를 상용직 노동자로 대체할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의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직 비중이 1%포인트 늘고 상용직의 비중이 1%포인트 줄면 노동생산성은 분석 방법론에 따라 최소 0.23%포인트에서 최대 0.56%포인트 감소했다. 고용안정성은 독일이 2017년 발간한 노동4.0 백서에서도 ‘좋은 노동’의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다. 안정성이 숙련도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있고 정규직이 많으면 구조조정 등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때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비정규직·간접고용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양대 노총이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맞춰 ‘기득권 내려놓기’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의 규제를 완화해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적 보호를 강화해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는 ‘유연안전성’ 모델이 모색되고 있다”며 “임금·직무 체계의 개선 등으로 기능적 유연성을 높이며 노동시장 하층의 경제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 노조에서도 기득권 내려놓기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해부터 채택하고 있는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이 대표적이다. 원청 정규직 임금은 적게 올리는 대신 중소 협력업체 및 비정규직의 임금을 많이 올리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임금은 4만5,000원 상승한 반면 중소 협력사업장 115곳의 임금은 평균 5만6,106원 올랐다. 노사정 합의에 따른 광주 등 지역상생형 일자리 만들기도 주목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합작 법인을 만들어 근무자들의 평균임금을 낮추는 대신 정부의 복지 지원을 늘림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구미·군산 등에서 후속 움직임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
[창간기획] '勢 불리기·선명성 경쟁' 매몰된 勞…"이대론 PIIGS 꼴 난다"
사회 사회일반 2019.08.05 16:38:53# 현대자동차 노조는 최근 임단협 과정에서 ‘정년퇴직에 대비한 정규직 인원 충원’을 요구했다. 올해 말 1,400명을 시작으로 오는 2025년까지 모두 1만7,500명이 정년퇴직하니 이에 상응하는 규모의 인력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과거와 달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력 충원 요인이 많지 않다”고 거부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금속노조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돌았다. 조합원 17만6,000명을 확보해 민주노총에서 ‘톱(TOP) 3 산별노조’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금속노조에서 현대차 조합원이 2만여명이나 빠지면 세력 축소가 불가피하니 ‘머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대노총 귀닫은채 최저임금 반발 차등화 적용 등 사회적대화 외면 남유럽국가 개혁실패 재연 우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기존 제조업 시대와 달리 노동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비할 사회적 대화는 공전하고 있다. 양대 노총의 세 불리기와 선명성 경쟁에 대해 ‘1980년대 노동운동’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노사정 신뢰 수준이 남유럽 국가들과 유사하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대비 2.87% 올린 8,590원으로 결정한 후 노사정 관계는 또다시 경색된 상황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총사퇴 입장을 밝혀 최저임금 차등화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고용노동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법안에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와 임단협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의 내용이 들어가자 ‘강력한 저항’을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반발해 내놓은 근거는 이들이 조합원의 이익에 충실하고 전체 근로자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로 산입범위 확대다.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산입범위가 기존 기본급에서 복리후생비·상여금까지 확대돼 실질적 삭감안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이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실례라고 꼬집는다. 기본급에 더해 수당을 받는 사람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최저임금제도의 목적 대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객전도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임금으로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사람들의) 사회 보장을 두텁게 하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것인데 근로조건의 향상을 도모하는 관점과는 다르다”며 “조합원의 임금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쓰는 것은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계가 조합원 중심의 선명성 경쟁, 제조업 시대의 투쟁적 노동운동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인한 업무 자동화, 플랫폼 노동, 긱 이코노미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노동 패러다임 변화’에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본위원회 당연직 위원을 제외한 모든 위원의 사퇴와 계층별 근로자 위원 3인에 대한 해촉이라는 강수를 꺼내 들며 사회적 대화 정상화에 나섰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등 각종 현안이 얽혀 노사정 관계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정치권 ‘4.0 위원회’ 만들어 노조·경영계에 방향성 제시해야” 계속해서 사회적 대화가 공전하자 우리나라가 2010년 중반 무렵 재정위기를 겪었음에도 연금·노동 개혁에 번번이 실패한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예와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권 교수는 “제조업 시대에는 공장이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사용자는 착취하고 노동자는 쟁취하는 태도가 일반적이었고 이는 우리나라의 고도성장 시대 때까지 유효했지만 지금은 노동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노사가 전술적인 투쟁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적해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선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경우 최대 노동조합인 이게메탈(금속노조)부터 자체적으로 시대 변화에 연착륙하기 위해 근로자 재교육 방안을 연구하고 노사정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게메탈 뒤셀도르프지부에서 ‘노동 2020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는 가비 실링 팀장은 “생산 현장에서 볼 때 자동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으로 모든 노동자가 피할 수 없다”며 “생산 환경의 현장이 바뀌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것도 문제다. 이들을 재교육해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여 새로운 일을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노사정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나 정치권이 콘텐츠가 없으니 노동계가 반대하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국회가 노동 4.0 위원회를 만들어 방향성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으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 압박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변재현기자 뒤셀도르프=한재영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사설]수명다한 노동정책 언제까지 방치해 둘건가
오피니언 사설 2019.08.01 17:46:21클라우드 등 정보기술(IT) 발전으로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노동정책은 구시대의 틀에 갇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거리를 받는 플랫폼 노동자가 한국에만도 54만명에 달한다. 무려 전체 취업자의 2%다. 그러나 정부는 정규직화 등 근로자 보호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재계가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6년 넘게 헛바퀴만 돌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임금인상을 수십년간 몰아붙여 초래한 결과다. 연공서열 호봉제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임금체계도 한국 투자에 나서는 외국인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제조업이 해가 갈수록 경쟁력을 잃는 것은 이런 고질적 문제 때문이다. 제조업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11~2015년 2.2%로 추락하며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틈만 나면 한국에 대해 “소득은 OECD 상위권에 근접했지만 생산성은 절반”이라며 노동시장 개혁을 주문해왔다. OECD는 “이중구조가 소득 불평등을 초래하고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으며 여성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고용보장을 완화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59돌을 맞아 ‘한국판 노동4.0 대계(大計)를 세우자’는 특별 기획보도를 하는 것도 이 같은 불합리한 노동시장 구조를 두고는 경제의 판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무섭게 밀려오는데 낫과 망치 시대의 낡은 노동정책을 고수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고 만다.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 관련법과 제도를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 교육정책도 노동환경 변화에 맞춰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는데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결과는 도태뿐이다. -
[창간기획] 가보지 않은 길, 한국판 '노동 4.0' 만들자
경제 · 금융 정책 2019.07.31 17:56:20이제는 노동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 1848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선언’에서 규정한 ‘낫과 망치’ 노동 개념은 플랫폼 노동자,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등 디지털 노동환경을 수용하지 못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몇 시간 일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파괴되고 있다. 18세기 말 산업사회(노동1.0), 19세기 후반 대량생산(노동2.0), 1970년대 이후 시장경제(노동3.0)에 이어 유연성이 강조되는 노동4.0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디지털시대에 특정 직업이 영구히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직업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언급하며 “기업과 젊은 세대들이 매우 특별한 독창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면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거리를 받아 서비스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한국에서만 54만명에 달한다. 전체 취업자의 2%에 이른다. 이처럼 노동현장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 노조의 사고방식과 현실진단, 정부의 대응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우선 기득권 노조가 바뀌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34.3달러로 OECD 평균(48.1달러)의 70% 수준에 그친다. 양대 노총에 가입한 10%가 나머지 90%의 눈물과 한숨을 보듬어야 한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지 말고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국가가 할 일은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가 아니라 자율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정책도 노동환경 변화에 맞춰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영국은 지난 6월 무인화로 사라질 위험이 큰 직종의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과 기술교육을 지원하는 ‘국가 재교육 계획’을 내놓았다. 아마존은 앞으로 6년간 7억달러(8,000억원)를 투입해 직원 10만명을 재교육시키기로 했다. 물량공세의 현금복지는 일하는 복지(workfare)로 전환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표심을 겨냥한 현금복지에 중독되면 재정은 배겨날 재간이 없다. 핀란드가 기본소득제도를 중단하고 일하는 복지로 시스템을 개조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시대 정신을 담지 못하고 있는 근로기준법·파견법 등 노동 관련 법의 손질도 필요하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은 모든 업종에 파견근로를 실시하거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은 제조업 분야의 인력파견을 금지하며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인더스트리4.0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은 경제·교육 등 관련 부처와 노조가 다같이 참여하는 노동4.0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치 논리에 밀려 노동시장 혁신을 주저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해나갈 수 없다”며 “기획재정부·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해 서둘러 한국판 노동4.0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파리=김연하기자 뒤셀도르프=한재영기자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
[창간기획]日 '일하는 방식' 일사천리 개혁...韓노동시계는 기득권·정쟁에 스톱
사회 사회일반 2019.07.31 17:48:35#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게임 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밤에 일하고 싶다”는 직원들의 요구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취업하기 전부터 ‘밤 제작’에 익숙해졌는데 오전9시에 출근시키면 컴퓨터 앞에 ‘시체’처럼 앉아 있다는 게 직원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 근무를 시키자니 A대표로서는 ‘오후10시부터 다음날 오전6시 사이’에 일하면 야간근로 수당 50%를 가산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이 걸린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도 심야수당 지급은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정부가 들어주지 않는데 심야수당까지 건드릴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달로 산업 및 노동구조가 빠르게 다변화되고 주 52시간 근로제로 업무시간마저 줄고 있지만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유연근로제는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6년 넘게 헛바퀴만 도는 모양새다. 장시간 근로의 개선을 근로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았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13년 5월 펴낸 ‘선진국 사례로 본 유연근무제 확산방안 연구’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월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근로시간제도 개선을 위한 경영계안’을 서울경제가 분석한 결과 두 보고서 모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1년 확대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활용 제고 등을 공통적으로 요구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선을 위한 경영계의 요구가 6년 동안이나 이뤄지지 못하면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계절적 요인으로 특정한 분기에 일이 많은 것처럼 분기별로 업무량의 변화가 큰 근로 형태에 활용하려면 단위기간 3개월로는 불충분하다”는 상의의 2013년 설명은 올해 경총의 “집중·연속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경우 현행 3개월 단위로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상의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전문직이나 사무직에만 국한돼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최대 단위기간은 2013년과 현재 모두 각각 3개월, 1개월에 불과하다. 2017년까지만 해도 유연근로제는 장시간 근로 관행의 개선과 일과 삶의 조화, 기업 경영의 효율성 제고, 저출산·고령화 추세 대응 등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대응책의 성격을 띠었지만 지난해 2월 ‘52시간 근로제’가 법제화되며 보완입법의 의미가 커졌다. 재계는 최근 우리나라와 근로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예를 근로시간 단축의 모범사례로 들고 있다. 2015년 일본 1위 광고회사 덴쓰에서 월 105시간이 넘는 잔업에 시달리다 여성사원이 사택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후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해 지난해 6월 입법을 마쳤다. 같은 해 2월 52시간 근로제를 입법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정책이 입안됐지만 일하는 방식 개혁에는 ‘잔업 상한 시간 월평균 80시간 초과 금지’라는 근로시간 단축 외에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연봉 1,075만엔, 약 1억1,75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야근 추가수당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 도입 △플렉스 타임제(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1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 등이 포함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하는 방식 개혁’ 추진의 필요성으로 △2065년 기준으로 생산가능인구가 51.4%로 줄고 고령화율은 38.4%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 △70세 이상 정년 연장에 60대 이상 65.9%가 동의 △30~39세 여성의 취업률 하락 등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발맞춘 노동제도 개선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근로시간 단축을 전반적인 노동제도 변화의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반영한 노동 4.0이 포함됐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사실상 근로시간 단축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오로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시정만 있었던 것”이라며 “국가가 할 일은 일률적 규제가 아니라 자율과 유연을 보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건강 훼손에 대해 제도적·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데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창간기획]플랫폼노동자 54만명 달하는데...제도는 '낫·망치시대' 머물러
산업 IT 2019.07.31 17:34:45# 메이크업 강사 문예람씨는 재능공유 플랫폼 ‘탈잉’으로 수강생들을 모집해 1주일간 15~17회가량 메이크업 수업을 진행한다. 탈잉을 통해 중개되는 메이크업 강의수업료는 1인 기준 시간당 1만~5만원으로 다양한데 문씨는 시간당 2만5,000원~3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문씨는 처음에는 본업과 병행해 ‘투잡’으로 강의를 했지만 최근에는 탈잉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서도 강의를 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문씨는 “처음에는 사람들과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재밌는 경험을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수업이 점차 인기가 많아지면서 일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플랫폼 수업을 중심으로 여러 일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과 클라우드 등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던 ‘플랫폼 노동’은 최근에는 배달기사나 강사 등 여러 형태의 일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또 직장 사무실이 아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리모트 워크(Remote Work·원격 근무)를 시도하는 스타트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용시장에서의 근로 환경은 이처럼 급변하고 있으나 관련 정책은 아직도 ‘낫’ ‘망치’와 같은 작업도구로 대변되는 구시대적인 노동환경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자=플랫폼 노동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특정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받아 서비스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미 배달의민족·쿠팡·우버이츠 등을 이용한 배달업무에서부터 탈잉·크몽 등을 통한 재능 공유, 타다 등 모빌리티 플랫폼을 활용한 운송업까지 다양한 일자리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 대비 1.7~2.0% 수준인 47만~54만명에 달한다. 오전9시 출근해 오후6시 퇴근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위한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 보니 플랫폼 노동의 장단점은 명확하게 갈린다.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일의 자율성이다. 실제로 우버코리아가 7월 초 배달대행 서비스 우버이츠의 ‘배달 파트너’ 중 300여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해 약 60%가량이 배달일을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시간·요일에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간·공간 제약 사라진 리모트 워크=IT는 일자리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만들어냈다. 최근 스타트업들은 클라우드 기반 인프라와 업무용 메신저 슬랙 등을 이용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플랫폼인 ‘로켓펀치’는 15명의 직원들이 서울과 인천, 제주, 미국 뉴욕, 일본 도쿄, 호주 시드니 등 곳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한다. 사무실도 없고 꼭 지켜야 하는 하루 업무 시간도 없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직원이 몇 시에 사무실로 출근해 몇 시간 동안 일을 했는지 평가한다면 로켓펀치는 업무의 과정과 결과를 모니터링한다. 조민희 로켓펀치 대표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일정을 세우고 업무를 하면 되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고 만족도가 올라가게 된다”고 밝혔다. 리모트 워크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출퇴근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 역시 여러 지역에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게 된다. ◇시대변화 못 따라가는 고용·노동정책=하지만 자율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안정성과도 연결된다. 플랫폼 노동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소득이나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며 보험 등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로 확대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교사, 택배 기사 등 일부 직종만 먼저 가입이 허용될 뿐 다른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후에야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장소와 업무환경은 고정된 사업장이 아니라 고객 요구 등에 따라 유연하게 바뀐다. 업무지시 및 배분, 급여·성과보상체계도 전통적인 산업군에서 보던 관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현재의 고용제도와 노동정책은 여전히 기존의 제조업 공장이나 서비스 매장과 같은 고정사업장 중심으로 틀이 짜여 있다. 예를 들어 주 52시간 근로제 방식을 플랫폼 노동자의 사업장에 적용할 경우 근무시간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것인지에서부터 쉽지 않다. 전통적인 산업 현장에서는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당연시되는 각종 사회보험 적용 지원정책의 경우도 투잡 등을 뛰며 기존 직장에서 이미 사회보험을 상당 부분 적용받는 노동자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사회보험 비용 지원보다는 고용자의 수요에 맞춰 교육훈련 지원, 보육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못지않게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해소가 함께 병행돼 근로자와 사용자 간 제도적 수혜의 균형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창간기획]자크 아탈리, 경제·정치·역사 아우르는 통찰력으로 금융버블 등 미래사회 예측
산업 기업 2019.07.31 17:33:25프랑스의 지성이자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 A&A 대표는 교수이자 사회이론가·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정치와 경제·역사 등을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14세 때 프랑스로 건너왔으며 프랑스 엘리트 고등교육연구기관인 그랑제콜을 네 곳이나 졸업하고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치와 경제계, 국제기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해왔다. 1974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았으며 이후 1984년 미테랑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는 약 10년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다. 1991년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설립, 2년여간 초대 총재를 지냈다. 199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컨설팅 기업 A&A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고 있다. 빈곤 퇴치를 위해서도 오랫동안 힘써오고 있다. 1998년 사회적 취약 계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전문 비정부기구(NGO) ‘포지티브플래닛’을 설립, 현재까지 대표로 일하고 있다. 빈곤을 퇴치하고 미래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포지티브플래닛은 전 세계적으로 1,100만가구를 지원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아탈리 대표는 1990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곳 어디서든 거주하는 ‘노마드(nomad)’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1997년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디지털 장치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인류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도 기후 이상에서부터 테러리즘의 부상, 금융 버블현상 등 미래사회의 모습도 정확하게 예측하며 세상을 놀라게 해왔다. /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
[창간기획]자크 아탈리 "노동환경 변화로 '빈곤층 노마드' 양산…질 높은 교육이 해법"
산업 기업 2019.07.31 17:33:18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75·사진) 아탈리앤드아소시에(A&A) 대표는 “(디지털라이제이션과 긱 이코노미 등으로 인해) 과거 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빈곤층 노마드’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학자이자 프랑스 정부의 특별보좌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 컨설팅 기업과 비정부기구(NGO)의 대표 등 학계와 정계·재계, 국제사회 등을 넘나들며 쌓은 탁월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탈리 대표는 지난 달 10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8구 A&A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전 세계의 노동환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나 고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한 회사와 연결되기보다는 점점 개별화하면서 개인 사업자나 개인 컨설턴트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점점 더 직업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서 2003년 출간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앞으로 인류는 의사·교사 등 한곳에 소속된 노동자인 ‘정착민’과 새롭게 나타나는 ‘하이퍼 노마드’ ‘빈곤층 노마드’ 등 세 부류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이퍼 노마드란 디자이너나 음악가, 소프트웨어 작가 등 창의적인 직업을 넘나들며 자발적으로 노마드가 된 이들을 지칭하며 빈곤층 노마드란 세계화 등의 충격으로 실직했거나 가난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노마드의 대열에 합류한 이들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디지털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빈곤층 노마드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모바일 플랫폼 시장이 커지면서 그때그때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등의 영향으로 영국 등에서 ‘제로아워 콘트랙트(zero-hour contract)’가 증가하는 것도 빈곤층 노마드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제로아워 콘트랙트란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활용하는 노동계약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0시간으로 책정한 뒤 고용주가 필요할 때마다 근로자를 호출하는 형태를 뜻한다. 근로시간은 물론 임금도 정해지지 않아 노동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아탈리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이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지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삶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며 “하지만 이런 식의 자유가 아니라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자가 포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얻게 되는 자유나 단순히 직업의 불안정만을 의미한다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스로의 희망대로 근무시간이나 직장 등을 자유롭게 설정하고 옮기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표면적으로 자유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환경이나 타의에 의해 근무환경이 다양해지면서 노동환경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교육을 대중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탈리 대표는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며 “하나의 오케스트라에는 오케스트라에 속한 정규 단원과 프리랜서나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는 객원 단원이 있을 수 있는데 객원 단원의 경우 오케스트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좋은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스타 음악가의 경우 굳이 오케스트라의 정규직 단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곳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연주하고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과 교육·의료·건강·식품·관광 등의 분야에서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존재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데도 ‘실업률이 높다’거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매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 노동자원을 창출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이런 이유로 인공지능(AI)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아탈리 대표는 “디지털의 발전 때문에 장기적·영구적으로 특정 직업이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노동환경의 주요한 변화는 직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 직업은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단지 그 직업이 담당하는 업무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탈리 대표는 “예를 들어 비서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 중 어떤 것들은 (AI에 대체돼) 없어질 수 있지만 이는 비서라는 업(業) 자체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라며 “설사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그 직업의 기능이나 용도를 대체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마치 촛불을 밝히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설명했다. 미래에 사라질 업무로는 단순 반복 업무를 꼽았다. 아탈리 대표는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는 것과 동시에 힘들며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들은 없어지고 기술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며 “오히려 이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2016년 출간한 ‘자크 아탈리의 미래 대예측’에서도 협업로봇(CoBot)은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을 덜어주고, 로봇 팔이나 다리 등을 사람에게 장착해 근력을 높여주는 외골격 로봇은 공장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만큼 신기술 발전을 통해 노동의 강도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아탈리 대표는 이처럼 급변하는 노동환경에서 개인이 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 되기’라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저서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언급하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은 뒤 이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각각의 개인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만의 역할을 하는 사명감도 주문했다. 아탈리 대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각 개인이 포기와 요구의 단계를 넘어 자신을 찾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며 “이런 일은 미래의 지구를 살기 좋은 곳,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가 이 지구에 태어난 가장 큰 이유는 지구를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웃어 보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사회는 매우 섬세하고 세련되고 깊이 있는 사회”라며 조언을 건넸다. 그는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업들과 젊은 세대들이 매우 특별한 독창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교육제도의 환경을 덜 계층화하는 일과 함께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창의적인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도록 문화에서부터 영화·예술·문학·음악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자유로운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
[창간기획]'N시간 계약' 단기 일자리만 늘려...'허울뿐인 英정책' 반면교사로
산업 기업 2019.07.31 17:31:52#영국에 살고 있는 제리 존스(가명)씨는 예상할 수 없는 다음 달 급여와 스케줄에 한숨을 내쉰다. 그가 한 주에 최소 15시간만 일하는 ‘15시간 계약직(15 hour contract)’ 근로자여서, 다음 주 스케줄은 물론 임금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근무하는 슈퍼마켓은 관리직을 제외한 모든 일반 근로자들과 주당 최소 15시간의 근로계약을 맺었고, 성수기 등 바쁜 시즌에 맞춰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사측은 곧 풀타임으로 계약을 바꿔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당 15시간으로는 자녀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조차도 어려워 더 일하고 싶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스케줄대로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추가 수입을 위한 투잡도 고려해봤으나, 매주 나오는 새로운 스케줄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노동환경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이는 문구가 ‘노동자의 천국’이다. 영국은 올해 1·4분기 실업률이 3.8%로 지난 1974년 이후 역대 최저를 나타냈다. 프랑스도 같은 기간 8.7%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해 표면적으로는 고용시장이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럽의 노동 현장을 찾아보니 이 같은 숫자가 ‘역대 최저 실업률의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존스씨와 같이 일주일에 1~2일만 근무하는 N시간 계약자나 무급 인턴십 등이 증가한 영향이 컸고 정부는 디지털과 플랫폼으로 변화된 노동환경을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다. ‘알바’ 일자리를 양산하는 한국에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르슬라 허우즈 하트퍼드셔대 고용 및 세계화 교수는 “0시간 계약(zero-hour contract)과 같이 불규칙하게 일하는 사람들도 실업자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률이 낮아졌다”며 “일은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실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스 베일리스 커뮤니티노동조합 스페셜 프로젝트 본부장도 “영국의 실업률이 낮게 나온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거나 장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약 500만명의 사람들까지 고용으로 집계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영국에서는 존스씨와 같은 ‘N시간 계약’이나 ‘제로아워 콘트랙트’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제로아워 콘트랙트’란 주당 근무시간을 ‘0시간’으로 정하고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고용주는 성수기·비성수기에 맞춰 인력을 조정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근무시간과 임금을 예측할 수 없어 안정성이 떨어진다. 고용안정성을 지켜주는 장치가 아직은 부족하다. 고용주와 노동자를 매칭하는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인 노동 익스체인지(Labor Xchange)의 조너선 키 대표는 “영국 내 제로아워 콘트랙터는 1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풀타임이 아닌 5시간 등의 N시간 계약까지 합하면 6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며 “제로아워 콘트랙트의 경우 고용주가 제시한 스케줄을 노동자가 거부할 수 있지만 N시간 계약자의 경우 거부할 권리도 없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데 고용주가 제시한 하나의 일감에 수백 명이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지원자는 늘어나고 임금은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우즈 교수도 “한 설문에서 지난 일주일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들이 2016년에는 220만명이었지만 올해에는 460만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 만난 차랑 공유서비스의 운전기사들은 긴 업무시간과 높은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공유서비스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매출의 15~25%로 높은데다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차랑 공유서비스 캡튼의 한 기사는 “본인 소유의 차를 사용할 경우에는 하루에 최소 250~300유로 정도의 매출을 내야 해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하지만 자신 소유가 아닌 렌트카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경우 하루에 560유로는 벌어야 생활이 가능해 일주일 내내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장시간 근로로 크고 잦은 사고가 발생하자 프랑스 정부는 우버 기사가 하루에 최대 10시간만 일하게 하는 등 규제를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기사들은 대개 3~4개의 플랫폼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기존 산업과의 갈등도 문제였다. 한 우버 기사는 “택시의 경우 번호판 가격이 10만 유로로 비싸며 교육도 길게 받아야만 기사가 될 수 있는데 우버의 경우 비용이 몇백 유로이고 교육기간도 일주일에 불과해 택시 기사들의 반발이 컸다”며 “이 때문에 택시기사와 육체적으로 싸우거나 서로의 차에 흠집을 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말했다. 특히 우버이츠나 딜리버루와 같은 배달 온라인 플랫폼 기사들의 경우 돈을 지불한 후 특정인의 계정과 차량을 여러 명이 돌려쓰는 식의 암시장까지 형성되는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긱 이코노미와 디지털 트렌드로 노동환경이 변화되는 것에 부응해 정부 차원의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의 경우 가장 빠르게 산업이 변했던 최근 몇 년간 정부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매달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컸다. 허우즈 교수는 “긱 이코노미와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임금이 낮아지면서 35세 미만 젊은 인력들은 풀타임 직업을 구하는 것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은 상태”라며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일반 노동자들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노동생산성과 서비스의 질까지 올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런던·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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