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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N시간 계약' 단기 일자리만 늘려...'허울뿐인 英정책' 반면교사로

[한국판 노동 4.0 大計 만들자]

1분기 실업률 역대 최저지만

500만명 프리랜서까지 포함

고용 질 악화 등 부작용 속출

#영국에 살고 있는 제리 존스(가명)씨는 예상할 수 없는 다음 달 급여와 스케줄에 한숨을 내쉰다. 그가 한 주에 최소 15시간만 일하는 ‘15시간 계약직(15 hour contract)’ 근로자여서, 다음 주 스케줄은 물론 임금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근무하는 슈퍼마켓은 관리직을 제외한 모든 일반 근로자들과 주당 최소 15시간의 근로계약을 맺었고, 성수기 등 바쁜 시즌에 맞춰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사측은 곧 풀타임으로 계약을 바꿔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당 15시간으로는 자녀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조차도 어려워 더 일하고 싶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스케줄대로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추가 수입을 위한 투잡도 고려해봤으나, 매주 나오는 새로운 스케줄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노동환경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이는 문구가 ‘노동자의 천국’이다. 영국은 올해 1·4분기 실업률이 3.8%로 지난 1974년 이후 역대 최저를 나타냈다. 프랑스도 같은 기간 8.7%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해 표면적으로는 고용시장이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럽의 노동 현장을 찾아보니 이 같은 숫자가 ‘역대 최저 실업률의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존스씨와 같이 일주일에 1~2일만 근무하는 N시간 계약자나 무급 인턴십 등이 증가한 영향이 컸고 정부는 디지털과 플랫폼으로 변화된 노동환경을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다. ‘알바’ 일자리를 양산하는 한국에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르슬라 허우즈 하트퍼드셔대 고용 및 세계화 교수는 “0시간 계약(zero-hour contract)과 같이 불규칙하게 일하는 사람들도 실업자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률이 낮아졌다”며 “일은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실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스 베일리스 커뮤니티노동조합 스페셜 프로젝트 본부장도 “영국의 실업률이 낮게 나온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거나 장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약 500만명의 사람들까지 고용으로 집계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영국에서는 존스씨와 같은 ‘N시간 계약’이나 ‘제로아워 콘트랙트’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제로아워 콘트랙트’란 주당 근무시간을 ‘0시간’으로 정하고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고용주는 성수기·비성수기에 맞춰 인력을 조정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근무시간과 임금을 예측할 수 없어 안정성이 떨어진다. 고용안정성을 지켜주는 장치가 아직은 부족하다. 고용주와 노동자를 매칭하는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인 노동 익스체인지(Labor Xchange)의 조너선 키 대표는 “영국 내 제로아워 콘트랙터는 1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풀타임이 아닌 5시간 등의 N시간 계약까지 합하면 6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며 “제로아워 콘트랙트의 경우 고용주가 제시한 스케줄을 노동자가 거부할 수 있지만 N시간 계약자의 경우 거부할 권리도 없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데 고용주가 제시한 하나의 일감에 수백 명이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지원자는 늘어나고 임금은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우즈 교수도 “한 설문에서 지난 일주일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들이 2016년에는 220만명이었지만 올해에는 460만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 만난 차랑 공유서비스의 운전기사들은 긴 업무시간과 높은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공유서비스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매출의 15~25%로 높은데다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차랑 공유서비스 캡튼의 한 기사는 “본인 소유의 차를 사용할 경우에는 하루에 최소 250~300유로 정도의 매출을 내야 해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하지만 자신 소유가 아닌 렌트카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경우 하루에 560유로는 벌어야 생활이 가능해 일주일 내내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장시간 근로로 크고 잦은 사고가 발생하자 프랑스 정부는 우버 기사가 하루에 최대 10시간만 일하게 하는 등 규제를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기사들은 대개 3~4개의 플랫폼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기존 산업과의 갈등도 문제였다. 한 우버 기사는 “택시의 경우 번호판 가격이 10만 유로로 비싸며 교육도 길게 받아야만 기사가 될 수 있는데 우버의 경우 비용이 몇백 유로이고 교육기간도 일주일에 불과해 택시 기사들의 반발이 컸다”며 “이 때문에 택시기사와 육체적으로 싸우거나 서로의 차에 흠집을 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말했다. 특히 우버이츠나 딜리버루와 같은 배달 온라인 플랫폼 기사들의 경우 돈을 지불한 후 특정인의 계정과 차량을 여러 명이 돌려쓰는 식의 암시장까지 형성되는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긱 이코노미와 디지털 트렌드로 노동환경이 변화되는 것에 부응해 정부 차원의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의 경우 가장 빠르게 산업이 변했던 최근 몇 년간 정부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매달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컸다. 허우즈 교수는 “긱 이코노미와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임금이 낮아지면서 35세 미만 젊은 인력들은 풀타임 직업을 구하는 것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은 상태”라며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일반 노동자들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노동생산성과 서비스의 질까지 올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런던·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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