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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자크 아탈리 "노동환경 변화로 '빈곤층 노마드' 양산…질 높은 교육이 해법"

[한국판 노동 4.0 大計 만들자] <상>노동 定義부터 재정립하라

-'유럽 석학' 자크 아탈리에 노동 4.0을 묻다

'긱 이코노미' 확산 등으로 노동시장 갈수록 불안정

자신만의 목적·역할 찾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돼야

기술발달로 업무 달라질뿐 '직업' 사라지진 않을것

한국사회 섬세하고 세련…독창성 살리는 환경 조성을

자크 아탈리 A&A 대표가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8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75·사진) 아탈리앤드아소시에(A&A) 대표는 “(디지털라이제이션과 긱 이코노미 등으로 인해) 과거 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빈곤층 노마드’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학자이자 프랑스 정부의 특별보좌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 컨설팅 기업과 비정부기구(NGO)의 대표 등 학계와 정계·재계, 국제사회 등을 넘나들며 쌓은 탁월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탈리 대표는 지난 달 10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8구 A&A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전 세계의 노동환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나 고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한 회사와 연결되기보다는 점점 개별화하면서 개인 사업자나 개인 컨설턴트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점점 더 직업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서 2003년 출간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앞으로 인류는 의사·교사 등 한곳에 소속된 노동자인 ‘정착민’과 새롭게 나타나는 ‘하이퍼 노마드’ ‘빈곤층 노마드’ 등 세 부류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이퍼 노마드란 디자이너나 음악가, 소프트웨어 작가 등 창의적인 직업을 넘나들며 자발적으로 노마드가 된 이들을 지칭하며 빈곤층 노마드란 세계화 등의 충격으로 실직했거나 가난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노마드의 대열에 합류한 이들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디지털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빈곤층 노마드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모바일 플랫폼 시장이 커지면서 그때그때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등의 영향으로 영국 등에서 ‘제로아워 콘트랙트(zero-hour contract)’가 증가하는 것도 빈곤층 노마드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제로아워 콘트랙트란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활용하는 노동계약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0시간으로 책정한 뒤 고용주가 필요할 때마다 근로자를 호출하는 형태를 뜻한다. 근로시간은 물론 임금도 정해지지 않아 노동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아탈리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이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지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삶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며 “하지만 이런 식의 자유가 아니라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자가 포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얻게 되는 자유나 단순히 직업의 불안정만을 의미한다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스로의 희망대로 근무시간이나 직장 등을 자유롭게 설정하고 옮기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표면적으로 자유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환경이나 타의에 의해 근무환경이 다양해지면서 노동환경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교육을 대중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탈리 대표는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며 “하나의 오케스트라에는 오케스트라에 속한 정규 단원과 프리랜서나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는 객원 단원이 있을 수 있는데 객원 단원의 경우 오케스트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좋은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스타 음악가의 경우 굳이 오케스트라의 정규직 단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곳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연주하고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과 교육·의료·건강·식품·관광 등의 분야에서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존재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데도 ‘실업률이 높다’거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매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 노동자원을 창출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이런 이유로 인공지능(AI)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아탈리 대표는 “디지털의 발전 때문에 장기적·영구적으로 특정 직업이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노동환경의 주요한 변화는 직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 직업은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단지 그 직업이 담당하는 업무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탈리 대표는 “예를 들어 비서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 중 어떤 것들은 (AI에 대체돼) 없어질 수 있지만 이는 비서라는 업(業) 자체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라며 “설사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그 직업의 기능이나 용도를 대체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마치 촛불을 밝히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설명했다. 미래에 사라질 업무로는 단순 반복 업무를 꼽았다. 아탈리 대표는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는 것과 동시에 힘들며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들은 없어지고 기술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며 “오히려 이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2016년 출간한 ‘자크 아탈리의 미래 대예측’에서도 협업로봇(CoBot)은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을 덜어주고, 로봇 팔이나 다리 등을 사람에게 장착해 근력을 높여주는 외골격 로봇은 공장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만큼 신기술 발전을 통해 노동의 강도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아탈리 대표는 이처럼 급변하는 노동환경에서 개인이 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 되기’라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저서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언급하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은 뒤 이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각각의 개인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만의 역할을 하는 사명감도 주문했다. 아탈리 대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각 개인이 포기와 요구의 단계를 넘어 자신을 찾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며 “이런 일은 미래의 지구를 살기 좋은 곳,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가 이 지구에 태어난 가장 큰 이유는 지구를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웃어 보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사회는 매우 섬세하고 세련되고 깊이 있는 사회”라며 조언을 건넸다. 그는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업들과 젊은 세대들이 매우 특별한 독창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교육제도의 환경을 덜 계층화하는 일과 함께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창의적인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도록 문화에서부터 영화·예술·문학·음악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자유로운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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