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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공익재단 '여시재' 설립한 까닭은?

미래 세계질서 전망·동북아 평화 모색 위한 초당파적 연구 플랫폼 지향

‘대화당(大化堂)’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옥 건물.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오전 7시부터 여시재 이사회가 열린다.




‘여시재(與時齋·시대와 함께하는 집)’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지난해 말 연구 목적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조 명예회장은 초당파적, 초국가적 연구를 통해 미래의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 여시재를 설립했다. 기업인이 자신의 부를 축적해준 국가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거액을 쾌척한 ‘기업 이윤 사회 환원’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조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여시제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국가의 미래를 챙기는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도 기업가도 학자들도 오늘 일에 떠밀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냉철히 들여다보고 미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답답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기업인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미래 전략을 제시할 연구기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조 명예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한샘 주식을 팔아 재원을 마련했다. 이 돈을 가지고 지난해 12월 15일 연구 목적의 공익재단 여시재를 설립했다.

여시재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함 그 자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현 언스트앤영 상임고문)이 이사장을 맡았다. 정창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현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현 포항공과대학교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현 법무법인 평안 대표변호사), 김현종 전 유엔대사(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박병엽 전 팬택 대표이사 부회장(현 팬택 씨앤아이 부회장) 등이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원장은 공석이다. 대신 부원장 두 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정훈 전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지역대표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부원장을 맡아 각각 대외협력과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미래의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 여시재를 만들었다.


네트워크형 연구기관을 지향하는 ‘여시재’
여시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기자는 북악산 자락 백사실 계곡을 아래에 품고 있는 이곳에서 조정훈 부원장을 만났다. 여시재는 한옥 건물 한 채와 3층짜리 건물 두 동으로 이뤄져있다. ‘대화당(大化堂)’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옥 건물에선 여시재의 이사회가 열린다. 3층짜리 건물은 각각 연구동과 후생동으로 나눠져있다. 연구동 건물 1층에는 여시재의 활동과 강연 등을 아우르는 스튜디오와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연구실과 강의실, 세미나실은 2층과 3층에 있다. 후생동은 숙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초청된 국내외 연구자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연구동에 가서 세미나 등에 참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시재는 기존 싱크탱크와 성격이 다소 다르다. 일부 언론에선 여시재가 한국의 ‘브루킹스 연구소’가 되려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의 대내외 정책 전반을 연구하는 종합연구소다. 1927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출신 기업가인 로버트 브루킹스의 이름을 따 창설됐으며 본부는 워싱턴 D.C.에 있다. 뉴딜 정책과 유엔의 탄생, 마셜 플랜, G20까지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의 산실 역할을 하며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시재는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각각의 연구 분야와 과제들을 모아 소화하는 ‘인하우스’ 조직이 아니다. 여시재는 상근 직원이 30명을 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조직이다. 여시재는 국내외 전문가 및 싱크탱크와 연대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네트워크형 연구기관을 지향하고 있다. 플랫폼형 연구기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존 싱크탱크가 지식을 가두어 둔 ‘탱크’였다면, 여시재는 지식이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다니게 만드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조정훈 부원장은 말한다. “‘탱크’형 연구소는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지식이 워낙 다양해지고 흩어져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죠. 여시재도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연구원을 300~400명 고용해서 어젠다(의제)를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엔 빠르게 변하는 이슈들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쓸모없는 조직이 될 수 있어요.”

여시재는 브루킹스 연구소보단 ‘채텀하우스’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채텀하우스는 외교·안보 분야의 세계 최정상급 싱크탱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의 별칭이다. 1920년 빅터 벌머 토머스에 의해 설립된 뒤 1926년 정식으로 왕립 연구소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채텀하우스는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 이름으로, 버킹엄 궁전에서 10여 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채텀하우스는 자신들의 몸집을 줄이고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식과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시재는 올해 10월 말 경 채텀하우스 대표를 초청해 업무 제휴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여시재는 다양한 어젠다를 수용하고 물리적 방법으로 지식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기 위해 미디어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조 부원장은 말한다. “저희는 다양한 디지털 네트워킹 수단을 이용한 ‘지식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 싱크탱크들은 물론, 시민,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접속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 형태의 플랫폼이죠. 살다 보면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것들을 미디어플랫폼에 올리면 이에 대한 해결책을 또 다른 이들이 내놓는 식이죠. 이 과정에선 당연히 갑론을박이 벌어질 겁니다. 필요하면 저희가 오프라인에서 토론회를 열어 답을 찾는 과정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렇게 나온 해결책을 정책 담당 부서나 국회에 연결해주는 일도 여시재가 하게 될 거고요.”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지역대표를 역임한 조정훈 부원장. 그는 여시재의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길
여시재가 다루고 있는 연구 주제는 거대하다. 여시재는 우선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 한국’, ‘도시의 시대’ 라는 세 가지 거대 화두를 연구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 미래의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한편, 한반도 국토 전략 등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세 가지 연구 주제는 일관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동북아시아 일대는 세계 인구와 경제력,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분쟁이 격화되면 세계를 집어삼킬 만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거꾸로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게 되면, 세계질서 안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조 부원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는 사실 조창걸 명예회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구 주제들입니다. 조 명예회장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세요. 그러려면 한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동안은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종속변수로 강대국에 끌려다녔지만, 이젠 한국이 동북아시아 지역 질서를 주도하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때가 됐다는 게 조 명예회장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야 한반도 통일도 기약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까닭에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라는 연구 주제는 ‘통일 한국’이라는 또 다른 연구 주제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여시재는 세계질서가 한반도 통일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거대 담론을 만들려 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세계질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조 부원장은 이 대목에서 ‘도시의 시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동북아가 공동 번영을 하든, 한국이 통일이 되든 최종 목표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속가능성 아니겠어요. 현재 지구의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는 주 공간은 도시입니다. 도시에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고선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주 무대인 도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연구주제로 승화됐습니다. 이 역시 조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화두였어요.”

여시재는 거대 담론을 통해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현실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각국 파워엘리트들과의 네트워킹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시재는 10월 8일∼11일 한 · 미 · 중 · 일 · 러 5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2016 여시재 동북아포럼’을 개최한다. 이 포럼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후안강(胡鞍鋼) 중국 칭화대 교수, 한팡밍(韓方明)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 안드레이 클리모프 러시아 연방평의회 대외관계 부위원장 등 각국 정·재계, 학계 인사 50여 명이 참석한다. 이들은 이번 포럼에서 ‘새로운 컨센서스를 위한 출발(Road to Future Consensus)’을 주제로 동북아 도시 간 협력, 북극항로와 일대일로(一帶一路), 동북아 에너지·철도·문화 협력에 대해 토론을 진행한다. 조 부원장은 말한다. “(이번 포럼에선) 절대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 세션도 진행합니다. 넥타이 풀고 한 방에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는 거죠.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닌, 충분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실효성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9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시재 내외신미디어데이’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광재 운영 부원장,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헌재 이사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창호 외신기자클럽 회장.


‘여시재’에 자율권 준 조창걸 명예회장
여시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담론과 함께 기술을 꼽고 있다. 내년 초에는 미래를 변화시킬 핵심 기술을 공모하는 대규모 기술경진대회 ‘C프로젝트’도 시작할 예정이다. 조 부원장은 말한다. “굉장히 큰 액수의 상금을 걸고 미래의 한국 혹은 미래의 인류가 먹고 살 수 있는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모할 계획입니다. 연구자들에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자신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자는 게 이 대회의 취지입니다.”

여시재에선 ‘대화당(大化堂)’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옥 건물에서 한 달에 한 번 오전 7시부터 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 이사회는 그냥 망치만 두드리는 요식행위 절차가 아니다. 새벽 6시30분쯤 되면 대부분의 이사 및 연구진이 도착해 강의를 듣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조창걸 명예회장은 지난 4월 이 여시재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순수 기금 출연자로만 남은 셈이다. 그 후 조 명예회장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자신과 한샘의 이름을 높이고 싶어 여시재를 만든 것이 아니라며 이사회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한다. 물론 여시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설명하고 설득했던 시기에는 이사진들과 자주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조 부원장은 조 명예회장이 출연자의 입김에 휘둘려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존 싱크탱크들이 많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여시재는 절대로 그렇게 가지 않을 겁니다. 여시재가 어느 정도 꾸려진 다음부터는 화두만 던질 뿐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기고 있어요. 어떠한 공식적인 의사결정 과정에도 개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 명예회장 스스로 자신의 사조직을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저도 부원장으로 임명된 뒤 조 명예회장을 딱 한 번 봤을 뿐입니다.”

조 명예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출연해 여시재를 만들었다. 일부 언론에선 약 4,000억 원 이상을 내놓았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조 부원장은 말했다. “2012년 조 명예회장이 만든 ‘한샘 드뷰(DBEW·Design Beyond East&West) 연구재단’에 출연한 약정가액에서 추측한 액수인 것 같습니다. 조 명예회장은 자신이 출연한 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고 계세요. 3년이든 5년이든 여시재가 성과를 낼 때까지 아낌없이 지원할 텐데 액수가 뭐가 중요하냐는 거죠.”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본 한반도 모습. 남북한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여시재는 한국이 동북아시아 지역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야 통일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현실로 옮긴다
조창걸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가구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 명예회장은 언론에 잘 나타나지 않아 ‘은둔형 기업가’로 불린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독특한 점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193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1969년 30세 때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동기인 건축가 김석철(올해 5월 12일 작고) 씨와 함께 응용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조 부원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샘의 내부 자료엔 당시 조 명예회장이 농촌주택 개량운동을 했다고 나와 있어요. 우리 전통 가옥은 여자들이 아궁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죠. 조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여성들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1년 뒤 응용과학연구소를 정리한 조 명예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서울 연신내에 있는 7평(23.14㎡)짜리 비닐하우스에 한샘을 세웠다. 싱크대 상판과 싱크볼 정도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그는 부엌에 ‘입식 주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한국 여성 해방에 일조한 일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샘은 1970년대 중반 아파트개발, 1980년대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 붐에 힘입어 1983년 수출 500만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조 명예회장은 1990년대 초반 신도시가 건설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자 한샘을 부엌가구 전문에서 종합 인테리어기업으로 확대 전환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 시기에도 한샘의 매출은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조 명예회장은 1994년 최양하 현 한샘 회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다방면에 걸쳐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개인과외 교사를 고용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미래 사회는 일방적 지배가 아닌 두 문명의 장점이 결합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려 보고, 사람들을 만나 습득한 내용을 검증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2012년 조 명예회장은 자신이 다듬은 철학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한샘 드뷰(Design Beyond East&West) 연구재단’을 설립했다. 조 부원장은 말한다. “동양과 서양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통해 한국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한샘 입장에서 디자인은 가구와 공간을 꾸미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조 명예회장은 공간을 도시로 확대 치환했어요. 동서양을 넘어선 도시, 또는 동서양을 넘어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였죠.”

조 명예회장은 한샘 드뷰 연구재단만으론 세계질서 변화와 한반도 통일 같은 거대 담론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핵 위험과 테러, 환경오염, 난민 문제처럼 한 국가가 개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문제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에겐 새롭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할 틀이 필요했다. 조 명예회장이 여시재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 명예회장은 창업 당시부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은 여시재로 영글었다. 여시재가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 한국, 도시의 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신문명’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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