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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32> 쇼핑몰·식당 심야까지 연장 운영...내수 부양 '등불' 켜다

■무역전쟁의 中 신병기 '야간경제'

베이징 '장등인' 담당관제 등 밤소비 늘리기 정책 잇따라

中 최초 24시간 영화관에 박물관·관광시설 야간 개장도

일상 바꾸고 있지만 사회안전 우선 여전...소비 촉진 미미

지난 7일 밤10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중국 베이징의 싼리툰 타이구리가 쇼핑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최수문기자




# 지난 7일 중국 베이징 싼리툰의 대표 쇼핑몰 타이구리(太古裏)는 밤10시가 넘도록 인산인해를 이뤘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유명 식당과 주점 앞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매장은 고객들로 북적였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 경기에는 찬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쇼핑몰 안의 서점 ‘페이지원’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최근 싼리툰이 더 밝아지고 편의시설도 많아져 자주 찾게 됐다”고 했다.

싼리툰의 활성화는 베이징시가 지난 7월 내놓은 ‘야간경제 발전과 소비촉진 조치’ 계획에 따른 것이다. 베이징시는 야간경제를 활성화해 내수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이 계획에 담았다. 공무원이나 기관·업계 인사를 ‘장등인(掌燈人·등불을 든 사람)’으로 선정해 지역 야간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입안·실천·홍보 등을 맡기고 대중교통수단 운행시간과 박물관·운동시설·관광시설의 운영시간을 연장했다. 쇼핑몰 등 각 상권이 벌이는 행사를 지원하고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야간순찰도 강화했다. 쑨야오 베이징시 상무국 부국장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장등인’이 지역의 야간경제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밤 풍경이 바뀌고 있다. 내수경기 둔화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영업시간 연장 등 지원책을 내놓고 볼거리를 마련하면서 야간소비 늘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내수경기 부양을 위한 새로운 무기로 야간경제를 육성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주민들에 대한 관리·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중국 사회주의체제 자체가 소비의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당국의 노림수대로 야간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야간경제 활성화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기존의 도시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통상 중국의 가게들은 저녁 일찍 문을 닫는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9~10시에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영업을 마친다. 야간에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도 많지 않다. 베이징 내 쇼핑몰은 싼리툰이나 시단·왕푸징 등에 제한적으로 있을 뿐이고 시설도 한국 등에 비하면 열악하다. 주요2개국(G2)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수도이자 인구 2,000만명이 밀집한 도시인 베이징이 이런 정도니 지방으로 가면 밤거리 분위기는 더 썰렁하다.

중국 경제의 기본 동력을 수출과 내수, 인프라 투자로 볼 경우 과거 경제성장의 중점이 수출과 인프라 투자에 놓였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국민들은 낮 동안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일찍 잠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수출이 정체된데다 부채 문제로 인프라 투자도 한계에 다다르면서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내수소비를 통해 성장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벽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낮에 소비할 시간이 없고 밤에는 소비할 시설이 없었다.



중국 정부가 야간경제에 눈을 뜬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야간경제’는 오후6시부터 다음날 오전6시까지 서비스 영업시간을 소위 ‘밤 시간대’로 확장한 경제개념을 일컫는다. 물론 정부가 개인에게 야간소비를 늘리라고 해서 시민들의 행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야간에 시간을 보내며 소비를 할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교통수단과 안전 확보도 필수다.

문제점을 인식한 중국에서 지방정부로는 처음으로 산둥성 칭다오시가 2004년 야간경제 육성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중국의 대표적 맥주 도시인 칭다오는 밤 소비를 늘리기 위해 ‘시·구 야간경제 발전 의견’을 내놓고 이를 통해 야시장·야간상점·야간문화활동 등에 대한 지원 규정을 정했다. 이어 2006년에는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도시인 저장성 항저우가 ‘야간 오락활동 발전 보고’를 통해 야간에 이용할 관광시설을 지원했다. 다만 당시에는 이렇다 할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후 중국이 야간경제에 다시 관심을 가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 허베이성이 ‘성·시 야간경제 발전 지도 의견’을 통해 관광특구를 만들면서다. 이후 허베이성 내 스자좡·탕산·바오딩시가 잇따라 관련 조례를 만들었고 2014년에는 충칭·닝보시가, 2017년에 난징·우시·시안시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고 경기둔화가 가시화하자 지방정부들은 종전처럼 단순하게 야시장이나 관광단지를 만들던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지난해 8월 쓰촨성 청두시가 ‘국제 소비도시 건설 행동 계획’ 조례를 만들면서 야간경제는 중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화두에 올랐다. 청두는 야간관광·소비시범구역을 지정하고 24시간 영업점을 지원하면서 내수소비를 끌어올리려 시도했다. 이후 톈진이 ‘야간경제 발전 의견’을, 산둥성 지난시와 장시성 난창시, 상하이시 등지에서 야간경제 발전 계획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의 야간경제에 불을 붙였다.

특히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인 상하이시가 올 4월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한 것은 야간경제 활성화의 전환점이 됐다. 상하이에서는 7월 중국 최초의 24시간 영화관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24시간 식당·주점·서점 등이 줄을 잇기 시작하면서 상하이 소비자들은 밤새도록 영화를 보며 즐기는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상하이시는 야간개장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베이징이다. 베이징시는 산하 상무국·교통위원회 등 14개 부서가 합동으로 만든 ‘야간경제 발전과 소비촉진 조치’ 종합계획에 따라 ‘장등인’ 담당관제도를 운영하며 실적을 챙기도록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야간경제가 라오바이싱(중국 인민)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싼리툰 타이구리의 한 서점에 한밤중까지 책을 읽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수문기자


물론 식당 영업시간을 연장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야간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비를 유도하려면 결국 ‘즐길 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베이징시가 2월에 이틀간 시도한 자금성의 야간개장은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자금성이 야간개장 당시 판매한 하루 3,000장의 입장권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성의 성공을 본보기 삼아 각 지방도시들도 문화유산에 대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표적 고대도시인 시안시가 이를 이어받아 도시성벽과 비림박물관 입장시간을 연장하고 유적을 배경으로 한 문화공연을 늘렸다.

지방정부에 이어 지난달 말에는 중국 국무원도 야간경제 활성화를 위해 24시간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가맹점 개업을 장려하는 한편 야시장과 심야식당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야간경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중국 내수소비를 늘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소비증대에 박차를 가하기에는 여전히 사회주의체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1949년 이른바 ‘신중국’ 건국 이래 중국 공산당의 최대 목표는 ‘사회안정’이다. 말이 좋아 안정이지 이는 결국 시위나 집회 등을 통한 반정부 불만세력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중국에서 대형 쇼핑몰 등 유통구조가 낙후된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경계하는 정책에 따라 국가가 운영하지 않는 대형시설의 건축과 유지를 제한해왔다는 것이다. 반면 알리바바나 징둥 등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는 것은 라오바이싱들이 서로 접촉할 필요가 없고 국가의 관리감시가 가능하다는 인터넷 쇼핑몰의 특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의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야간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결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을 확대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이것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적인 중요행사가 있을 때 진행되는 치안단속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인 10월1일을 앞두고 이미 몇 달 전부터 노래방이나 주점·나이트클럽 등 유흥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국가적 축제를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단속의 대상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본래 취지는 퇴폐업소 등을 단속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한다는 것이지만 경계가 모호해 결국 대부분의 야간업소가 타깃이 된다. 한쪽에서는 밤 소비를 늘리라고 독려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억제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 KTV(노래방) 업소 사장은 “중추절(한국의 추석)을 앞두고 손님이 줄곤 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하다”며 “괜히 단속에 걸려 망신을 당할 수 있다면서 11월에나 오겠다는 단골들이 많다”고 전했다.

중국 내수소비의 둔화는 공개된 경제지표가 말해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10%대를 넘던 월별 소비지출 증가율은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지난해 8%선으로 내려앉았다. 올해 들어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 등에 힘입어 다시 소폭 반등했지만 하반기 들어 주춤하면서 7월 증가율은 7.6%까지 떨어졌다. 통상적으로 경제성장률 ‘바오류(保六·6% 이상)’를 확보하기 위한 소비증가율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8%를 밑도는 수준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밤 소비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 수요는 여전히 약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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