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편의점 진열대가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보냉백에 바나나맛우유를 10~20개씩 쓸어 담는 모습이 연일 포착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의 한 점포 관계자는 “100개 정도 진열해놔도 한 시간 안에 싹 팔린다”며 “주말에는 하루 1400개씩 들어오는데 당일 완판”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행의 증표”…바나나맛우유 ‘완판 대란’
‘달항아리 모양 용기’로 친숙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한국 드라마·영화 속 소품으로도 자주 등장하면서 ‘K-푸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웨이보,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한국 가면 꼭 사와야 할 기념품”으로 소개되며 외국인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품목’으로 꼽힌다.
CU에 따르면 올 1~8월 외국인 간편결제(알리페이·위챗페이 등) 매출 1위가 바로 바나나맛우유였다. 국내 전체 판매량도 하루 평균 80만 개에 달해 빙그레 연 매출의 20%를 책임지는 효자 상품이다.
빙그레는 이번 무비자 특수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인천공항·명동·강남 등 중국인 관광객 밀집 상권에 전용 코너를 마련하고, 신규 매대만 올해 10개 이상 추가 설치했다. 여기에 외국인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품명에 영문 라벨을 추가한 리뉴얼 버전도 다음 달 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소비자가 원하는 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한국 여행의 증표’”라며 “바나나맛우유가 그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K-콘텐츠 힘 입은 식품 콜라보, ‘케데헌 라면’ 돌풍
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은 식품가로 번졌다. 농심은 케데헌 캐릭터와 협업한 라면·스낵 시리즈를 선보이며 외국인 관광객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특히 명동·한강 선착장 등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가 대거 몰리는 지역에서는 ‘너구리 라면가게’ 팝업스토어를 열고 현장 체험형 판촉을 진행 중이다. 관광객들은 “한국에서만 살 수 있다”는 희소성에 열광하며 기념품처럼 라면을 묶음 단위로 사 간다. 일부 점포에서는 출시 직후 품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농심 관계자는 “케데헌은 글로벌 팬덤이 탄탄해 캐릭터만으로도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며 “이번 협업은 단순한 식품 판매를 넘어 K-콘텐츠를 통한 경험 소비”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SNS에는 ‘케데헌 라면 인증샷’이 쏟아지고 있으며,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웃돈을 주고라도 구하겠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라면을 ‘저렴한 간식’ 정도로 봤지만 지금은 K-콘텐츠가 얹히면서 고급 기념품처럼 소비되는 분위기”라며 “농심이 외국인 매출 확대의 키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오리온 ‘비쵸비’, “한국의 도쿄바나나 노린다”
오리온의 디저트 브랜드 ‘비쵸비’도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동남아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국산 과자 ‘비쵸비’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일본인 관광객 A씨는 “한국에 오면 비쵸비를 꼭 사간다”며 “초콜릿이 통으로 들어가 식감도 좋고, 패키지도 예뻐 선물용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뿐 아니라 외국인 전반의 ‘K-스낵’ 수요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역 롯데마트 등 외국인 특화 점포에서는 ‘비쵸비 대한민국’ 단독 패키지가 과자 카테고리 매출 1위를 차지했다. 명동·홍대 일대에서도 꾸준히 ‘완판’ 기록을 세우며 “한국의 도쿄바나나”로 불리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비쵸비는 일본 도쿄바나나, 대만 펑리수처럼 한국 여행 필수 구매품으로 성장 중”이라며 “문화유산과 K-콘텐츠를 결합한 한정판을 통해 한국의 독창성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인 고객들은 단순 과자뿐 아니라 김, 아몬드, 젤리류까지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편의점·대형마트 매출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무비자 특수, 아직은 ‘예열 중’
한편 면세업계는 아직 본격적인 소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무비자 입국이 시행된 첫날, 중국인 단체 관광객 상당수가 크루즈 여행객이어서 명품·화장품 같은 고가 소비보다는 바나나맛우유, 과자 등 단가가 낮은 식품류 구매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롯데·신라·신세계 면세점은 고객 수가 최대 2배 늘었지만 매출은 주로 식품·액세서리·담배 등 소액 품목에서 증가했다. 업계는 국경절 연휴와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성격의 단체 관광객이 본격 유입돼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국내외 전담여행사가 모집한 3인 이상 단체는 비자 없이 15일간 국내 전역을 관광할 수 있으며, 제주도는 개별·단체 모두 30일 무비자가 유지된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내년 6월까지 약 100만 명의 중국 관광객 추가 유입을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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