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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낙태 반대론자에 칼자루 쥐어준 공화당

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법이 지난 주 수요일(9월1일)을 기해 시행에 들어갔다. 연방대법원은 이 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며 일부 진보단체들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함으로써 낙태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텍사스의 새 낙태제한법은 1973년에 나온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완벽히 무력화하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 텍사스 낙태제한법이 법의 집행을 온통 일반인들에게 일임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성향이 짙은 법원들은 이를 핑계 삼아 로 대 웨이드의 판례에 저촉되는 새 법의 시행을 막지 않았다. 연방 대법원도 한 밤중에 작성자의 서명이 담기지 않은 한 단락짜리 법정의견서를 발표하는 방법으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격렬한 찬반논란을 피해가면서 과거의 역사적 판례를 쓸모없게 만드는 묘수를 선보였다.

이에 따라 보수성향이 강한 다른 주들도 상원법안 제8호(SB 8: Senate Bill 8)로 알려진 텍사스 낙태제한법을 그대로 모방한 관련 법안을 연이어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SB 8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텍사스에서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태아의 낙태는 불법이다. 태아의 심장박동은 생리가 끊긴 후 2주 뒤인 임신 6주쯤 감지된다. 이 기한을 넘기면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SB 8의 가장 충격적인 조항은 낙태반대론자들에게 그들과 뜻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사실상의 기소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낙태제한법의 집행을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일반 주민들에게 완전히 일임했기 때문에 “낙태시술을 지원, 혹은 방조하거나 낙태를 유도하는 행위”를 한 개인이나 단체를 상대로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까지 취할 수 있다.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는 제소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이들을 도운 낙태 시술소 직원, 친지와 가족 및 해당 병원에 자금을 지원한 비영리단체는 물론 임신부를 시술소로 데려다준 택시기사까지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게다가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정부로부터 변론비용과 함께 최소 1만 달러를 지급받게 된다. 설사 패소한다 해도 피고 측이 변호사 변론비용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송절차를 밟는데 들어간 비용만 부담하면 그만이다.

연방대법원은 텍사스 낙태제한법의 기기묘묘한 소송절차를 핑계 삼아 낙태권 옹호단체들이 제기한 SB 8 시행중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법전문언론인 다리아 리스위크와 마크 조셈 스턴은 슬레이트에 게재된 공동 기고문에서 “연방정부가 낙태를 제한하면 시술소들은 통상적으로 법 집행을 담당하는 주정부의 책임자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만 SB 8의 경우 단속이나 기소권을 주 정부가 아니라 낙태에 반대하는 일반인에게 주었기 때문에 소송을 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SB 8은 공화당이 장려하는 자경주의(vigilantism)에서 삐져나온 곁가지다.



오늘날의 공화당은 위스콘신 주 케노샤에서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사용으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격렬한 항의시위가 발생했을 당시 두 명의 시위자를 사살한 백인 청년 카일 리텐하우스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공화당 지도부는 지난 1월 6일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확정짓는 최종 인증절차를 저지하기 위해 의회에 난입했다가 사망하거나 체포된 폭도들을 순교자와 정치범으로 묘사했다.

지난해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바이든의 유세 버스를 도로 밖으로 밀어내려 했던 텍사스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칭찬했다. 루비오 의원은 공개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한 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지방선거에 나설 공화당 카운티 행정매니저 후보로 지명된 스티븐 린치는 지난 주 마스크착용을 의무화하기로 결정한 카운티 교육구 이사회에 관해 언급하면서 “20명의 건장한 남성들을 데리고 회의장에 들어가 제발로 나가지 않는 이사들을 강제로 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수 년 간, 공화당은 다양한 형태를 띄운 우파들의 협박을 합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일부 주는 가두 시위자를 차로 들이받은 운전자들에게 면책권을 주었고 또 다른 일부주는 선거사기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찾으라며 당파색이 짙은 우익 음모론자들에게 전자투표장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들은 또 유권자와 선거관리원들을 협박한 이력을 지닌 투표소 참관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법안을 연이어 통과시켰다.

텍사스 낙태제한법은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법은 낙태반대론자들에게 그들의 적을 괴롭힐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반낙태단체인 “텍사스 라이트 투 라이프”는 이미 익명의 제보를 받기 위한 “내부고발자”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단체의 고위 임원인 존 시고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텍사스 낙태제한법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생명옹호론자들에게 이 법의 집행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낙태제한법은 여성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개인과 조직이 제기한 숫한 소송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될 때쯤이면 산더미 같은 법정비용으로 개인과 기구 모두 파산직전의 상태로 몰리기 십상이다. 텍사스의 새 법에 맞서 법정투쟁을 벌이는 일부 낙태시술소의 법정대변인이자 생식권리센터의 법률고문인 마크 헤론은 지난 수요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SB 8이 어떻게 소송폭탄 세례를 몰아올 것인지 설명했다. “새 법은 텍사스 주민이면 누구나 그들이 거주하는 카운티 내에서 낙태관련자들을 상대로 개별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게다가 법원은 이 법에 따라 재판지 변경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주 전역에 걸쳐 한 건 혹은 여러 건의 동일한 낙태를 두고 수 백 건의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설사 이 모든 재판에서 피고측이 이긴다 해도 복수의 법정에서 소송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주 전역에 걸쳐 일괄적으로 낙태권을 지켜내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새 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낙태시술자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 지난 화요일, 낙태 클리닉 체인에 속한 “홀 우먼스 헬스”는 새로운 낙태제한법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시술을 받으려는 임신부들로 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었다. 마지막 시술은 낙태제한법 효력 발생을 5분 앞둔 화요일 오후 11시 56분에 끝났다. 이제 텍사스의 다른 클리닉들과 마찬가지로 홀 우먼스 헬스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들리지 않는 경우에만 낙태시술을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양측 모두로부터 줄소송이 이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SB 8이 폐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SB 8은 이미 텍사스의 낙태권을 초토화했을 뿐 아니라 보수적인 골수 지지자들이 그 나머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공화당의 악착같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덧붙여 우익 대법관들이 다수인 연방대법원은 이를 제한하기 보다 묵시적으로 지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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