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언어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인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자연과학 역사학자 마이클 고딘 박사에 따르면 과거 유럽에서는 라틴어가 과학계의 유일한 국제어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과학자들이 라틴어에서 조금씩 떠났고, 갈릴레오와 뉴튼을 포함한 학자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고딘 박사는 이런 트랜드의 변화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연구성과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연구자의 욕구가 첫 번째고, 가톨릭의 권위가 점차 약화되고 개신교가 득세하던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 두 번째 요인이다.
이처럼 라틴어가 과학계의 공용어 지위를 상실하면서 각국의 언어가 혼재된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는데 연구자들은 공용어의 부재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하면서 과학의 발전속도가 느려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19세기 중엽쯤 3개 언어가 다시 공용어로 정착됐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불어, 영어, 독일어를 해야했어요. 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읽을 줄은 알아야 했죠.”
그런데 이중 독일어는 공용어의 지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지의 연구자들이 국제학회나 국제과학기구를 조직할 때 전범 국가 출신 독일 과학자들을 끼워주지 않았던 것.
게다가 독일 정부는 1933년 또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자국의 물리학 교수 5명 중 1명, 생물학 교수 8명 중 1명을 문화적·정치적 이유로 해고해 버린 것이다. 해고된 교수들 대다수는 유태인 또는 사회주의자들이었는데 많은 수가 독일을 떠나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갔고, 새로운 고향에서 영어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바로 이때부터 영어가 과학계의 공용어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실제로 정착되기까지는 그로부터 수십년이 더 걸렸다. 주요 원인은 바로 냉전이었다. 냉전의 반작용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과학 논문들도 영어 또는 러시아어로 양분된 것이다.
그러던 1970년대에 구 소련이 몰락하면서 영어가 우위를 점했으며,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점유율이 96%로 높아졌다. 고딘 박사는 앞으로도 영어의 점유율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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