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새로운 유가 방정식

Oil's New Math

원유 가격이 급락하자, 세계적인 전문가들조차 에너지 방정식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닌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포춘이 미래의 유가 공식을 엿보았다.
BY BRIAN O’KEEFE
ILLUSTRATION BY LEONELLO CALVETTI



신참 헤지펀드 매니저 조너선 골드버그 Jonathan Goldberg는 이번 사태를 예측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2014년 초, 그는 특이한 점을 눈치챘다. 전 세계 원유 재고량이 과거 같은 시기 평균과 비교해 훨씬 빠르게 늘고 있었다. 그러나 공급과잉의 심화는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다. 기준유가는 지난 몇 년간 계속되던 배럴당 100달러 부근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유가가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라는 생각이 점점 퍼지고 있었다.

골드버그는 2013년 9월 BBL 원자재 가치 펀드(BBL Commodities Value Fund)를 첫 출시했지만, 그때도 석유 시장의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는 앞서 10년간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와 스위스의 대형 원자재 업체 글렌코어 Glencore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다. BBL 펀드에서 골드버그는 원유는 물론 석유 제품도 거래하는 '배럴 넘나들기(across the barrel)' 전략을 취했다. 또 장기 전망을 주시하되 단기적인 기회에 집중했다.

올해 33세인 그는 "우리는 앞으로 3개월, 6개월, 아니 1년 정도를 보고 있다"며 "우린 일간 · 주간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수익이 난다는 확신이 없는데도 투자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골드버그는 천연가스와 미국 정제유 가격 상승에 베팅해 월 7%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는 곧 원유에서 뭔가 더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골드버그 팀은 재고량의 증가세를 면밀히 살폈다. 1분기가 끝날 무렵, 뚜렷한 경향이 드러났다. 새로운 원유 공급원이 생겨나고 있었다. 2008년 말 이후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이 80%나 증가했는데, 그중 대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한 셰일 원유 생산량이었다. 그 결과 공급이 소비를 압도했는데도, 유가는 시장원리와 반대로 고공행진을 펼쳤다. 공급 중단에 대한 두려움 탓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분쟁, 이라크 북부에서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IS 때문에 작년 6월 원유 가격은 최고가를 경신했다.

골드버그는 유가 하락을 불러일으킬 계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가을 무렵, 그는 선물 가격이 갑자기 약세를 보였음에도 석유 실물 현금가가 선물가격보다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걸 포착했다. 때문에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하락세가 시작됐다. 11월 27일, OPEC은 정유업계 다수의 예상을 깨고 고유가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량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원유 가격은 폭락했다. 경질유 가격의 기준인 서부 텍사스 중질유(West Texas Intermediate·WTI)가 6월 배럴당 108달러를 기록했는데, 그 후 1월이 되자 그 가격이 44달러까지 떨어졌다. 골드버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그의 펀드는 12월에만 26%의 수익률을 올렸다. 1년 총 수익률은 51.3%. 이 펀드는 자산규모가 5억 4,000만 달러까지 불어난 후 청산됐다.

골드버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지금 향후 사태의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유가격 50% 하락은 가격구조, 수요 성장, 생산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저유가는 장기적일까, 곧 반등할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새로운 유가 공식을 살펴봐야 한다. 단기적으론 컨센선스가 아니라 변동성에 주목해야 한다. 정보 및 분석업체 IHS의 부회장 댄 여진 Dan Yergin-석유의 역사를 필독서 '황금의 샘(The Prize and The Quest)'의 저자다-은 "모두가 동의하는 유일한 사실은, 과거의 공식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석유 업체들은 대부분 수조 달러 규모의 사업을 벌인다. 때문에 원유가격 급락은 시장 관계자 대다수에게 놀라움 못지않게 막대한 손해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11월, 금융정보업체 S&P 캐피털 IQ는 에너지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이듬해 1월 1일 브렌트유 가격을 얼마 정도로 예상했었는지 설문을 실시했다. 배럴당 50달러, 80달러, 아니면 100달러? 80달러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78%). 2%만이 50달러라고 답했다.

이런 확신이 나온 배경에는 두 가지 예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내 셰일 유전과 기타 지역에서 생산을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이 배럴당 75~80달러 정도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예상이었다. 둘째, 이들은 OPEC의 리더 사우디아라비아-지난 40년간 석유시장의 충격을 흡수해 왔다-가 과도한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생산량을 감축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러한 믿음에 사로잡힌 석유업계는 훗날 돌이켜보면 명확했을 법한 시장 흐름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공급이 늘고, 특히 사우디가 생산량을 감축할 뜻이 없는 상황에서 가격 조정은 불가피했다. 자산관리업체 GMO의 공동 창립자 겸 수석 투자전략가 제러미 그랜섬 Jeremy Grantham은 "과학계에서 말하는 '통찰 가능한 영역(available insight)'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200억 달러를 운용하며 종류에 상관없이 시장 불균형을 잡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지만, 자신 또한 가격 폭락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유가 하락의 여파는 막대한 타격을 빠르게 입혀나갔다. 상장된 석유 기업들의 시장가치 수십억 달러가 증발됐다. 상장과 비상장 기업 모두 근로자를 수천 명 해고하고, 굴착기 수백 대 가동을 중지하는 등 2015년도 자본지출 예산을 공격적으로 삭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셰일 혁명의 원동력이었던 미국의 신흥 셰일 개발 지역에서 이런 현상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현장 리포트를 읽으려면 노스다코타 유전을 취재한 '심판을 기다리며' 기사기사를 참조하라).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파산과 인수합병이 잇따를 것이다.

"업계에 대한 투자는 초고유가를 가정하고 이뤄졌다. 따라서 현재는 탐사 및 생산자본지출 측면에서 내부 붕괴가 일어난 전형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휴스턴 소재 석유·가스 투자은행인 시먼스 앤드 코 Simmons&Co의 수석 연구원 빌 허버트 Bill Herbert의 분석이다. 그는 "탐사 및 생산(E&P) 업체들은 2009년 금융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붕괴한 이후, 내부 현금흐름이 단절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HS의 최근 보고서도 2009~2013년 동안 미국 내 생산 성장률이 현금흐름을 2,720억 달러나 초과했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수치의 최소 40%는 부채에 해당한다. 때문에 추가로 대출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예컨대 블랙스톤 Blackstone은 최근 에너지 업계 투자전문 펀드를 신설해 45억 달러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 업계는 비용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 여진은 "기업들이 저유가 시대에 맞춰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며 "10년 전에는 유가 상승에 적용해야 했다. 당시에는 비용이 크게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폭락 사태 이전에도 대형 에너지 기업 최고위 임원들 사이에선 비용 관리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유가 하락 전에는 단순한 우려였다면, 이제는 집착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현실에 맞게 생존 모드에 들어갔지만, 업계는 여전히 향후 유가 흐름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조정 능력을 통해 몇 달 안에 수요와 공급이 다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1986년과 비슷한 사태로 치달을까?(몇 년간 신규 공급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OPEC가 생산량을 유지해 가격이 크게 떨어져 버린, 간담이 서늘하도록 유사한 상황이다) 기준유가는 1월 말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바닥을 친 후, 2월 초 반등했다. 기사 작성 시점에선 WTI가 배럴당 53달러, 브렌트유가 62달러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미 가동 중인 유전이 너무 많아 원유 생산량은 계속 치솟고, 재고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월 초, 미 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전략적 휘발유 재고량을 넘어선 4억 1,700만 배럴이라고 발표했다. 해당 시점을 기준으론 최소 80년 만의 최대치다. 다른 지역의 원유 공급이 큰 차질을 빚지 않는 한, 유가는 재고량이 소모될 때까지 계속 낮은 가격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채굴량 감소는 궁극적으로 셰일가스 생산량 증가에 제동을 걸 것이다. 기존의 내륙 유전 연간 생산량이 5% 이하로 감소한 반면, 셰일 유전은 첫해 50% 이상 감소한 경우도 많았다.

석유 시장에선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을 앞서는 일명 '콘탱고 Contango'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유가가 조금이라도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월 중순에는 2017년 12월 말 브렌트유 원유 가격이 73달러가 넘는 선에서 거래돼 현물가보다 18%나 높았다. 그 결과 트레이더들이 미래에 더 높은 가격에 원유를 팔기 위해 공급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유동적인 추가 저장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초대형 유조선을 빌리기도 했다.

세계 최대 독립 원유거래업체 비톨 Vitol의 임원 크리스 베이크 Chris Bake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신기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지금 당장은 이 석유를 살 여력이 안되니 저쪽으로 좀 옮겨 줄래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소비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지난 몇 년간 수요 예측 수치를 몇 차례 낮춰왔다. 최근 보고서에는 '수요의 최대 견인차였던 중국과 세계 경제의 연료 수요 모두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는 향후 5년간 수요가 매일 700만 배럴 이상 증가할 것이라 보고 있다. 원유 가격이 낮아지면 미국 휘발유 가격이 떨어져 소비가 촉진된다. 그러나 유럽처럼 소비자 유가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다른 나라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최근 발간된 두 보고서는 '유가가 더 폭락하지 않는 이상, 업계가 당분간 현재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에너지 전문 분석업체 우드 매켄지 Wood MacKenzie는 전 세계 2,222대 유전에 대한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일 경우, 전 세계 유전의 0.2%만이 마이너스 현금 상태(cash-negative basis)로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달러일 경우에도 1.6%에 불과했다. IHS의 연구에서도 2014년 신규 유전 중 47%는 WTI 가격이 61달러 이하로 떨어져도 손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관리업체 오펜하이머 Oppenheimer의 수석 석유 애널리스트 퍼델 게이트 Fadel Gheit는 수요와 공급이 다시 균형을 이룰 경우, 유가는 신규 생산량의 한계생산비에 수렴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다른 논쟁을 낳고 있다. 게이트는 5년 전 미국 셰일 유전 개발이 사업성이 있으려면 유가가 90달러는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그보다 기준선이 많이 낮아졌고, 미래에는 기술 발달로 그 기준선이 더 떨어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업계를 30년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셰일 혁명이 유가공식을 바꿨다고 본다. 셰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변화다." 게이트는 유가가 오르되 100달러를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그랜섬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장기간 유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유가 기준선이 높아졌을 때 주요 패러다임의 2가지 변환이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과거 수십 년간 기준가격은 16달러(오늘날 가치로 환산한 금액)였다. 두 배로 오를 때도, 절반이 될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16달러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에 OPEC이 등장하면서 기준가격이 35달러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랜섬은 "반 토막이 날 때마다 구세계의 종말이 찾아왔다. 그게 바로 '신세계의 질서(New World Order)'였다."라며 "가격이 올라가도 반대 방향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랜섬은 2000년 이후 신규 유전 개발이 어려워지고, 비용도 증가하면서 이런 점이 비용구조에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기준선이 75~80달러까지 상승했다. 그 후 시장은 두 배로 뛰는 상황(2008년 7월 유가가 150달러 근처까지 치솟았다)과 반 토막이 나는 상황(2008년 12월 40달러 이하까지 폭락했다)을 모두 겪었다. 미국 셰일 가스 붐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다시 올라 기준선이 100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규 유전 규모의 감소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데이터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IHS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비(非)셰일 유전 발견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4년은 1950년대 이후 최초로 전통적인 대형 유전(매장량 5억 배럴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랜섬은 중기적인 유가 상승을 예측한 것과 별도로, 20~30년 후 미래에는 기술 발달로 석유가 운송용 연료로서의 인기를 잃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아름답도록 복잡한 세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골드버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따라갈 생각이다. 유가 하락에 베팅할 근거가 됐던 지표들이 미래에는 상승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와의 인터뷰는 맨해튼 끝자락의 한 사무용 빌딩 38층에 위치한 그의 회의실에서 어느 날 오전 진행됐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 생산량을 과다 감축할 경우 유가가 다시 치솟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투자할 뜻은 아직 없다.

그는 거창한 이론이나 과감한 예측은 자제했다. "이 퍼즐에는 열쇠가 없다." 그는 예일대 기부금 운용 담당 데이비드 스웬슨 David Swensen의 지도 아래, 행동 금융학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예일대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굴리면 '3년 안에 유가가 50달러가 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런 가능성도 있다. 수요가 늘지 않고, 업계가 비용을 20% 감축하고,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가 현 기조를 유지하고, 리비아가 생산을 재개하고, 나이지리아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는다면 50달러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모든 변수 중 하나도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는 새로운 유가공식을 풀기 위해선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