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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승헌 에르메스코리아 대표

국내외에서 맹활약한 마케팅 전문가<br>이젠 '좋은 일터' 만들기 선봉 나선다

한승헌 에르메스코리아 대표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마케팅 전문가다. P&G, 한국코카콜라, 네이버, LG전자 등에서 발군의 마케팅 실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마케팅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에게 한국 사업을 맡겼다. 에르메스는 그가 LG전자 스페인 법인을 '스페인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만든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2012년 7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의 한국 지사 사장으로 한승헌 당시 LG전자 스페인 법인장이 발탁됐다. 업계에선 의외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한승헌 대표의 이력을 아무리 살펴봐도 '명품'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대표가 에르메스코리아를 맡은 지 3년이 흘렀다. 포춘코리아는 한승헌 대표를 만나 에르메스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부터 들어봤다. 한 대표는 그의 전 직장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의 전 직장 이야기는 꽤 길었다. 에르메스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승헌 대표는 마케팅 전문가다. 그는 1986년 대우그룹 마케팅 부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임무는 그룹의 해외 광고캠페인 제작이었다. 당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을 외치며 해외시장을 개척할 때였다. 대우의 브랜드 파워가 약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김우중 회장은 미국에서 대대적인 광고캠페인을 지시했다. 'DAEWOO! That's Who?'가 당시의 광고 카피였다. 한승헌 대표는 말한다. "미국의 주요 매체 중 포춘,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에 광고를 게재하기로 하고 저는 팀원들과 함께 뉴욕으로 갔습니다. 자신만만했죠. 당시 대우그룹 광고비는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보다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뉴욕에서 일하면서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광고 콘셉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미국 광고 대행사의 업무능력을 보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습니다."

한 대표는 대우그룹에서 사직하고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Wharton School of University of Pennsylvania, MBA)에 입학했다. 2년 과정을 마친 1989년, 그가 취업한 곳은 프론터앤갬블(P&G, The Procter 7 Gamble Company)이었다. 당시는 P&G가 세계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아시아 인력을 대거 확충하던 시기였다. "P&G에 입사했더니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조인수 아웃백코리아 대표가 4년 차 선배로 계시더군요. 당시 차 부회장님은 파이낸스 부문을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한 분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는 차석용 부회장의 조직 관리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조직에서 빅 픽처(Big Picture)를 아는 사람은 차 부회장 한 분입니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을 추진하시죠."

한 대표는 미국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1992년 P&G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P&G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한 샴푸 브랜드 '리조이스' 출시에 참여했다. 리조이스 샴푸는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샴푸'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등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생활용품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던 한승헌 대표는 그 후 2001년 다시 한국코카콜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말한다. "스포츠 마케팅과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당시는 한일월드컵이 개최되기 전이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컸어요." 한승헌 대표는 1968년 코카콜라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첫 번째 한국인 마케팅 디렉터란 기록을 남겼다. 2002년 한일월드컵 성공 덕분에 한국코카콜라는 6,000억 원이라는 초대박 매출을 기록했고, 아직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옛 기억을 더듬던 한 대표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당시는 콜라 소비가 줄어들던 시기였어요(한 대표가 말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웰빙 열풍을 타고 음료시장에 복숭아, 알로에, 토마토 주스 등 건강음료가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탄산음료 시장이 고전을 겪고 있었다). 당시 광고캠페인 파트너는 한국 광고업계의 전설적 인물인 박우덕 웰콤 사장이었죠. 당시 저는 광고캠페인의 내용을 세계화보단 현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광고캠페인 주제가 'Life Taste Good(사는 맛을 느껴요)'였는데, 한국 정서에는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박 사장님과 '코카콜라를 마시는 이유를 제시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좀 더 즉홍적이고 재미난 문구를 생각했죠. 그렇게 탄생한 광고캠페인이 'Stop Thinking Feel it(생각을 멈추고 느껴봐)'였습니다.

그렇게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차츰 한국 기업에서도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03년 당시 국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 2위였던 네이버의 마케팅 총괄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1위 기업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다. 공통 관심사를 지닌 인터넷 유저들을 인터넷 공간에 모으는 다음카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음이 사용자를 대거 끌어들이고 있었다. 네이버는 이에 대항해 메일 용량을 다음이 제공하는 메일 용량의 2배인 1GB로 늘리고 블로그도 만들었다. 네이버 블로그는 다음 카페와 동일한 형태의 서비스. 한 대표가 네이버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블로그 유저를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이었다.

그는 네이버의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하면서 광고캠페인도 전개해나갔다. 당시 그가 박웅현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만든 광고캠페인은 '세상의 모든 지식-네이버' 편으로 배우 전지현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TV CF의 마지막 장면에서 녹색의 네모난 상자 안에 해당 브랜드 이름을 삽입하는 광고캠페인도 진행했다. 이 광고를 통해 '궁금한 점은 네이버로 검색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장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네이버는 블로그와 함께 인터넷 유저 간 정보 공유 서비스인 '지식 검색'까지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2004년 3월에는 사이트 방문자 수에서 선두주자였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추월했다. 이후 지금까지 네이버는 인터넷 1위 기업의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승헌 대표는 네이버에 오래 몸담지 못했다. 네이버 광고를 본 당시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이 한승헌 대표를 LG전자 마케팅 담당자로 점 찍었기 때문이다. 2005년 한 대표는 LG전자 한국마케팅부문 광고팀장(상무)으로 영입되었다.

한 대표: 당시 LG전자 연간 광고금액은 1,8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김쌍수 부회장님이 '전권을 줄 테니 알아서 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겐 멋진 기회였어요.

기자: 네이버가 그리 쉽게 마케팅 담당자를 놓아주던가요? 스톡옵션(Stock Option) 포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한 대표: 당시만 해도 젊었잖아요. 마케팅 업계의 중심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인터넷을 잘 모르기도 했고요. 이 말을 했더니 김범수 당시 공동대표(현재 다음카카오 의장)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나도 인터넷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성장할지 가늠이 잘 안 돼요'라고요. 당시보다 주식 시세가 10배 이상 올랐으니 스톡옵션 가치도 최소 10배 이상은 올랐겠네요. 그래도 후회는 안 합니다. 가전, 모바일 등 LG전자 국내 광고 80여 편을 만드는 데 3,000억 원 정도를 집행했거든요. 정말 신나게 광고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한 대표가 LG전자에 합류한 후 만든 야심작은 초콜릿폰 광고였다. 초콜릿폰은 LG전자 휴대폰 제품으론 처음으로 1,000만 대가 팔려나갔다. 초콜릿폰은 최대 가전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모토로라에 이어 2위로 자리 잡게 해준 제품으로 LG전자에게 '피처폰 왕국'이란 별명을 안겨준 제품이었다.

그러던 2007년, 국내 광고를 총괄하던 한승헌 대표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LG전자가 글로벌화에 역점을 두면서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할 책임자로 한승헌 대표를 선임했다. 한 대표는 말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이력 때문이겠죠. LG전자의 글로벌 아이덴티티와 마케팅 조직을 디자인하고 꾸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한 대표는 이후 유럽시장의 주요 거점인 LG전자 스페인 법인장을 맡게 된다. 한승헌 대표가 법인장으로 재직할 당시 LG전자 스페인 법인은 스페인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대표는 말한다. "사실 에르메스가 저를 고용할 당시만 해도 저의 마케팅 이력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에르메스는 마케팅에 관심이 없었죠. 제가 에르메스코리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 김주연 상무님이 제게 했던 말이 '에르메스는 마케팅이란 용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대표가 환하게 웃었고 배석한 김주연 에르메스코리아 상무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에르메스는 모든 업무에서 마케팅 대신 '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를 쓴다. 한 대표는 이에 대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니즈를 만들어내진 않겠다는 에르메스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한승헌 대표도 그를 영입한 에르메스의 속내가 궁금했다고 한다. "아무도 내게 에르메스가 날 선택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유추는 해볼 수 있었죠. 에르메스코리아의 조직문화와 업무방식을 글로벌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해외에서 외국인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 정도면 국내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에르메스 경영진은 면접에서 업무 성과에 대한 질문보다는 한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예컨대 한 대표에게 권위적인 면이 있는지 확인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승헌 대표는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소지하고 있는 명품은 프라다 구두가 유일했다. 그런데 에르메스 경영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명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 대표는 말한다. "능력의 출중함과 고상함에 놀랐습니다.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격식을 따지지도 않았어요. 품격이 있었죠. 소박하고 검소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에르메스 최고 경영진은 '우리가 명품을 만든다고 해서 착각을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장인이다'라는 점을 강조하더군요. 에르메스는 훌륭한 가족기업입니다. 미국의 단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과 모델과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모두 경험한 저에게는 에르메스 조직문화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현재 에르메스는 창업자인 티에리 에르메스 Thierry Hermes의 6대손인 악셀 뒤마 Axelle Dumas가 CEO를 맡고 있다. 그의 이름에 에르메스가 붙지 않은 이유는 3대조인 에밀 에르메스 Emile Hermes가 딸만 넷을 두었기 때문이다. 악셀 뒤마 CEO는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인 로베르 뒤마 Robert Dumas의 손자이다. 악셀 뒤마는 지금도 할아버지 로베르 뒤마의 가르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가격이 비싼 게 아니라 원재료가 비싸다', '에르메스 제품은 우리가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등이 그것이다. 한 대표는 이에 대해 "'기업이 이익을 좇느라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해선 안 된다'는 경영원칙과 '비록 부자들에게 명품을 판매하지만, 에르메스 자손은 자본가의 후손이 아니라 장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본으로 사들인 제품을 마케팅을 통해 비싼 값에 판매하는 여느 명품 기업과는 다른 건전한 기업정신"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에르메스의 독특한 경영철학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에르메스 경영진은 논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직관의 중요성을 늘 인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데이터 대신 기업의 철학에 따라 의사결정을 합니다. 논리와 데이터로 의사결정을 하는 대부분의 기업과는 다른 방식이죠."

그렇다면 에르메스의 한국 시장 상황은 어떨까? 참고로 에르메스는 1996년 지금의 에르메스코리아가 위치해 있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부지를 구매할 정도로 일찌감치 한국 시장의 성장잠재력을 예견했다. 한 대표는 '개인적 견해'임을 강조하며 한국 시장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는 의식주 중에 '의'가 가장 발달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민족으로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패션산업에서도 새로운 선두 시장으로 부상한 거겠죠. 제품의 질에 대한 욕심도 많습니다. 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겠네요. 미국은 상대적으로 제품의 질보단 트렌드를 중시하다 보니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크게 발달했죠.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한국이 계급이 사라진 평등사회이기 때문에 명품에 대한 욕구가 높다고 생각해요. 명품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역시 계층이 무너진 후부터 명품시장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육성하고 색다른 전시회나 행사도 다양하게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2001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후원하고 있으며 교육 후원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기부에 인색한 명품', '아무 이유 없이 가격만 올리는 명품'같은 부정적인 이슈로 여느 브랜드와 함께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곤 한다. 한 대표는 말한다. "단언컨대 에르메스는 환율이 변동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이익을 좇느라 가격을 높이진 않아요. 그럴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에르메스는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이에 대해 한승헌 대표는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여느 명품 브랜드와의 차이점도 서슴지 않고 말했다. "에르메스는 대체제가 없습니다.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대체제로 수요가 몰리지 않습니다. 타 명품들은 서로가 대체제입니다. 그러니까 가격이나 판매량이 오르내리겠죠. 에르메스는 원가가 비싼 것이지, 제품의 가격을 마음대로 부풀리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조립만 하거나 OEM 방식으로 제작해 브랜드만 붙여 파는 명품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한-EU FTA 혜택을 본 명품 브랜드가 에르메스밖에 없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입니다. 관세인하 혜택을 본 명품 기업은 거의 없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에르메스에는 소위 말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없습니다. 대신 진정한 장인들이 있죠. 타 명품 브랜드는 디자이너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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