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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권, 이제 내려놓으세요

[FORTUNE'S EXPERT] 송길영의 '세상 사는 이야기'


전문성 없는 상사의 의사결정권은 간혹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아래에서 올라 온 좋은 아이디어와 판단을 묵살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지요. 위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우리 기업의 독점적 의사결정권은 그래서 기업의 합리성을 해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최고위직까지 올랐던 분에게 이상적인 매니저를 구별해 내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휘하 임원들의 능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이 방법은 이들에게 3개월씩 휴가를 줘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휴가 기간 중 평소 그가 맡고 있던 일들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 임원은 특정 개인에게 의존적인 조직 구조를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의 업무 진행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죠.

많은 직장인들은 본인이 없으면 회사 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착각에 빠져 살곤 합니다.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근대 산업체계의 특징인 ‘분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직장인들은 조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분업이 지향하는 ‘시스템 중심의 대량 생산 체제’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대 자본주의’는 그 성격상 어느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시스템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화에 매우 잘 적응한 우리 기업들이지만, ‘관리자=상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관리자는 아직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 담당 직원이 업무를 서투르게 처리하거나 결과에 책임을 지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그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유교적인 전통에서 시작된 연공서열 문화 때문인지, 관리자와 직원이라는 수평적인 ‘ 직무의 차이’ 가 수직적인 ‘직급의 차이’로 인식되면서 여러 가지 나쁜 관습들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특히 기업 문화에 피라미드 형 위계적 구조를 자리 잡게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구조에선 하부 직원의 우수한 생각이 위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관료화의 부정적인 면이 고개를 들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관료화의 특징 중 하나는 자리에 앉으면 무언가 ‘ 역할’ 을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김 대리가 기안을 하나 만들어왔습니다.

이 기안은 매우 훌륭합니다. 하지만 이 기안을 받은 이 과장은 자신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족을 달거나 내용 수정을 지시하는 식으로 몇 번이나 기안을 다시 만들게 합니다. 돌고 돌아보지만 역시나 초안이 제일 낫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결국 초안이 위로 올라갑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겪고 계신 문제일 것입니다.

위의 경우는 그나마 낫습니다. 더한 경우는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아닌, 집단 어리석음(Collective Stupidity)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 집단의 팀 단위 조직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집단 어리석음이 발현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일반적인 기업 조직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겁니다. 50대의 임원과 40대의 부장 · 차장, 그리고 30대의 과장과 대리, 20대의 사원. 이런 조직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온 나라이다 보니, 이들이 자라온 환경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큰 축복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같은 조직문화에선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작용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선 좀 더 창의적인 세대가 만들어낸 쿨한 아이디어가 위로 올라갈수록 밋밋하고 엣지 없게 변하는(혹은 정체불명의 것으로 퇴화하는), 그야말로 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연령의 계층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디어란 이미 존재하거나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아이디어에 대해 가장 낮은 이해 수준을 가진 사람의 의견( 참견이라고 하는 게 차라리 더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도 반드시 반영되어야 지만 아이디어가 위로 올라가는 구조가 제일 큰 문제인 셈입니다. 아마 현재에도 우리나라 기업 곳곳에선 집단 내 최소 지성의 크기에 맞춰 안이 확정되는 ‘재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일 겁니다.

이번에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예로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한국에 온 대기업 임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국 기업에서 늘 사용되지만 아직도 그에겐 너무나 낯선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의사결정’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의사결정이라는 말은 업무를 맡은 담당자가 자신의 판단이 아닌 상사의 결정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재판’이라는 이름의 서류철이 우리나라 기업에 유독 많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의사결정 때문입니다.

그가 일하다 온 해외 기업 문화에선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그 업무에 관한 한 가장 많은 정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담당자가 해당 업무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때문에 상급자가 업무 담당자의 결정을 판단하고 최종 결정을 대신하는 ‘의사결정’이 그에겐 너무나 생경한 단어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 임원이 하는 말을 요약하면, 디자인을 맡은 전문가는 기술 전공의 CEO에게 의사결정을 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급상으론 CEO가 더 위에 있지만, 디자인 전공이 아닌 CEO가 (자신이 전문성을 갖지 않은) 디자인 분야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건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이런 예들을 볼 때, 현재 우리 기업의 문화는 과거시험을 통해 공채로 뽑힌 관리들이 모든 분야의 결정을 내리던 과거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물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그에게 많은 경험을 제공해 이상적인 정치와 행정을 시행하고자 했던 선대의 철학과 효율성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폭증하고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는 그 방식이 맞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역이 전문화되고 분화됐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일상의 모든 서비스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기초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에서 예의 ‘ 의사결정권자’ 가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을 독점한다면, 그 결정은 재앙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공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경쟁력이 낮은, ‘아는 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 내리는 결정으로 일을 진행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어떻게 전 세계 경쟁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요?

앞서 있는 상대를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열정(이라 쓰고 야근이라 읽습니다)적으로 일하기만 하면 성공하던 시대는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과거의 방법으로 대응해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프로페셔널들이 모여 함께 즐기면서 협업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반 보라도 먼저 시장을 개척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송사(宋史)에 나오는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썼으면 믿으라(疑人不用用人不疑)”는 말은 단순히 신뢰의 문제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문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넘어 권한의 위임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어야 그 말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그 동안 애써온 우리 사회의 노력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으려면 지금 이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동안 악착같이 노력해서 얻은 권리라고 착각하지만 기실 별 쓸모없는 ‘의사결정권’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여러분부터 말이죠.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상상하지 말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욕망을 보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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