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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지폐 도난사고… 한은 보안시스템 뚫렸다

외주사 직원 5,000만원 빼돌려

한국은행, 특별감사 착수하고 화폐재분류 업무절차 점검 나서

"재발방지 철저 대책을" 목소리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의 부산본부에서 대낮에 5,000만 원이 도난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은에서 지폐 유출 사건이 발생한 것은 김명호 당시 총재의 사퇴로까지 비화 된 1995년 이후 20년 만이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화폐의 발행과 유통을 맡는 한은의 보안 관리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한은과 경찰에 따르면 한은 부산본부의 외주업체 직원 정 모(26)씨는 16일 지폐분류작업 도중 5만 원권 지폐 1,000장을 절도했다가 적발돼 17일 긴급체포됐다. 정 씨는 한은으로 회수된 지폐 중 재사용할 것과 폐기 처분할 지폐를 구분하는 기기를 수리하는 직원이었다. 그는 사건 당일 오전 10시 20분쯤 5,000만 원을 몰래 빼돌린 뒤 "우체국에 다녀오겠다"며 훔친 지폐를 부품 상자에 담아 은행을 빠져나갔다. 정 씨는 훔친 지폐를 자택에 놓고 은행으로 돌아와 근무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그러나 정 씨의 범행은 이날 오전 정산 작업에서 드러났다. 돈이 부족한 것을 발견한 직원들이 CCTV를 분석해 정 씨가 은행을 빠져나갔다 돌아온 사실을 확인하고 추궁해 자백을 받았다. 훔친 지폐도 모두 회수했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오래 근무를 하다 보니 CCTV 사각지대가 보였고, 순간적인 욕심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2년 4개월간 이 업무를 맡아왔다. 한은 부산본부 관계자는 "이중 삼중의 사고예방 절차를 시행해 사고 즉시 돈이 부족한 것을 발견했지만 작업장을 출입하는 직원을 매번 몸수색하지는 못한다"고 해명했다.

한은엔 비상이 걸렸다. 이주열 총재는 16일과 17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특별감사에 착수하고 화폐 재분류 업무 절차도 점검하기로 했다고 한은은 18일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외부직원 관리가 규정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외부 용역업체 직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모든 지역본부 내 CCTV의 사각지대가 있는지도 정밀 재점검하기로 했다.



한은에서 화폐 유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5년 부산지점과 옥천조폐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산지점에서는 직원이 1993년부터 2년간 낡은 지폐를 폐기 처분하는 과정에서 현금을 빼돌렸다. 한은은 이를 알고도 은폐했다. 설상가상으로 옥천조폐창의 한 여직원이 지폐묶음을 훔쳐 유흥비로 탕진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되기도 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화폐 관리를 총괄하는 중앙은행에서 화폐가 도난당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화폐 관리만큼은 철저한 메뉴얼에 입각해 다루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훈기자

세종=이태규기자 ksh25t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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