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캠페인을 떠올려보라. 당시엔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의 최우선 과제로 대규모 무역 협정을 추진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현재 임기 18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그는 무역 협정에 집중하고 있다.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강력한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면서도, 12개국이 참여하는 협정을 하루 빨리 마무리해 일본에서 칠레까지 연결하는 환태평양 시장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럴수 있었던 데에는 마이클 프로먼의 공로(해당 논쟁에 대한 입장에 따라 누군가는 책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이 매우컸다. 지난 7월 중순, 말레이시아에서 막 돌아온 오바마 행정부 무역대표부 대표는 백악관 근처의 사무실에 앉아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셔츠 차림의 프로먼은 “당연하게 여겨 문제를 그냥 넘기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협정자체가 진절머리 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28조 달러 규모의 경제 활동을 새로운 규칙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트럭, 의약품, 쇠고기, 그리고 각종 상품들의 국가 간 거래를 용이하게 만들면서도 저작권 보호부터 근로 기준까지 모든 규정들을 전면 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협정자체에 회의적인 미국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또 다른 문제도 가지고 있다.
올해 52세인 프로먼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업무를 맡아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는 백악관 내 그 누구보다도 오래되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하버드 로스쿨 시절, 둘은 법률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 Harvard Law Riveiw에서 함께 일했다.
프로먼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로버트 루빈 Robert Rubin 재무장관의 수석보좌관으로도 근무했다. 그 후 루빈을 따라 시티 그룹에 합류했다.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월가 기부 네트워크에 그를 소개한 것도 프로먼이었다. 그 후 오바마는 그를 곁에 두며 여러 임무를 맡겼다.
프로먼은 처음부터 백악관 내에서 공격적인 무역파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2010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둘은 이 지역과 더욱 긴밀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를 시작했다.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도 여러 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톰 도닐런 Tom Donilon은 “접근 방식을 설계하는 데 있어 그는 영리한 지략가다. 그는 전략적 중요성을 잘 간파한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프로먼은 무역 협정이 즉각적으로 만들어낼 고용 창출 효과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NAFTA가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던 과거가 여전히 민주당의 꼬리표로 따라다닌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국가들이 잇따라 협상에 참여하고 2013년 일본까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행정부 내 저항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에겐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올 봄과 여름 두 번에 걸쳐 협정의 신속한 타결을 위해 대통령의 신속처리 권한을 확보하려 노력했지만, 민주당의원들이 그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무역대표부는 약 1,700회에 걸쳐 의회 브리핑-200회는 프로먼이 직접 했다-을 실시했지만 찬성으로 돌아선 민주당 의원이 5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은 적어도 과정을 진척시키는 데에는 충분했다. 프로먼과 그의 팀은 이제 합의의 마지막 문제를 늦여름까지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의회로 돌아와 아군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프로먼은 “핵심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의 말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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