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라' '오렌지 걸' '모범선수'…. 미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7년 차 최운정(25·볼빅)에게는 별칭이 참 많다. 첼라(Chella Choi)는 최운정이 LPGA 투어 데뷔 전부터 쓰는 영어이름. 볼빅의 오렌지색 공만 써서 오렌지 걸로 불리기도 하며 지난해는 투어 동료들이 뽑은 모범선수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쓰린 별칭도 있다. 바로 '우승 없는 톱 골퍼'. LPGA 투어는 얼마 전 우승 없는 톱 골퍼 1위로 최운정을 꼽기도 했다.
'우승 없는'이라는 수식을 떼기까지 햇수로 7년이 걸렸다. 최운정은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 메도우스GC(파71·6,512야드)에서 끝난 마라톤 클래식(우승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에서 최종합계 14언더파를 기록한 뒤 장하나(23·비씨카드)와의 연장전에서 이겼다. 2009년 데뷔 후 6년 만의 첫 승. 157번째 출전 만에 이룬 '156전 157기'였다.
18번홀(파5·530야드)에서 진행된 연장 첫 홀에서 최운정의 86야드 거리 세 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갔고 장하나의 샷은 그린을 넘어 러프에 잠겼다. 장하나는 4온 2퍼트 보기, 최운정은 3온 2퍼트로 파를 지켰다. 50㎝가 채 안 되는 파 퍼트를 넣은 뒤 눈물이 터진 최운정은 얼굴을 가리느라 바빴다. 허리 통증을 딛고 사흘 연속 단독 선두를 달렸던 루키 장하나는 정규 18번홀에서 3m 버디 퍼트를 놓쳐 연장까지 간 게 아쉬울 만했다. 시즌 두 번째 준우승.
2타 차 공동 3위로 출발한 최운정은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은 끝에 역전극을 완성했다. 준우승 세 차례가 최고 성적인 그는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3·4라운드에서 최운정의 드라이버는 페어웨이에서 단 두 차례 벗어났고 퍼트 수는 이틀 연속 26개였다. 마지막 날 완벽에 가깝던 드라이버가 처음 삐끗한 게 하필 정규 18번홀이었지만 최운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18번홀에서 티샷을 왼쪽 숲으로 보내는 실수가 나왔다. 하지만 파만 지키자는 생각으로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그게 우승으로 이어졌다"며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첫 승을 어렵게 했으니 2승·3승은 보다 쉽지 않겠나. 이번 우승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운정의 우승으로 올 시즌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합작 승수는 11승으로 늘었다. 2006·2009년에 이은 최다승 타이기록. 아직 대회가 14개나 남아 있어 신기록 수립이 확실해 보인다. 지난해 우승자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13언더파 공동 3위, 김효주(20·롯데)와 백규정(20·CJ오쇼핑)은 11언더파 공동 5위로 마쳤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10언더파 공동 8위.
최운정은 박인비처럼 국내 무대를 거치지 않고 LPGA 투어에 진출했다. 고등학생 때인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가 LPGA 2부 투어에 발을 디딘 뒤 2008년 정규투어 퀄리파잉(Q)스쿨을 플레이오프 끝에 통과했다. LPGA 투어 2009시즌 최연소 신인이었다. 최운정은 투어 생활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한 번도 골프가 싫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 크게 주목 받는 유망주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대회 출전 자체는 물론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다"는 설명. 10위 안에 들 때마다 작은 가구를 사는 게 자축 의식이다. 지난해 31개 대회 가운데 30개 대회에 나간 최운정은 올 시즌도 18개 대회에 개근하고 있다. 누구든 살갑게 대해 국적에 관계없이 친구도 많다. 제시카 코르다(미국)와는 골프장 밖에서도 자주 만나고 훌리에타 그라나다(파라과이)에게는 서울 관광도 시켜줬다. 첫 우승으로 한은 풀었지만 목표는 변함이 없다. 최운정은 "매년 상금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10위였으니 올해는 그보다 나은 순위를 차지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