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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11월 11일 11시

일본 동경대학 부속병원 의사들은 지금도 독일어를 즐겨 쓴다. 진단서나 약처방을 독일어로 표기하고 의사들끼리 병명이나 증상을 말할 때도 독일어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수년전 디스크로 그곳 동경대학 병원에 입원했을 때 확인한 사실이다.한마디로 메이지(明治) 유신의 탓이다. 유신 당시 왕립 공무원양성소(동경제국대학의 전신) 수료후 외국에 파견된 일본 엘리트들은 유럽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최고의 나라, 최고의 문물만을 선별적으로 골라 조국에 수입했다. 왕실제도는 영국의 제도를, 학제와 형법은 프랑스, 민법은 독일 것을 모방했다. 군사제도만은 독일(당시 프러시아) 것을 선호했다. 당시 보불(普佛)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가볍게 누른 독일 비스마르크의 군사제도와 양병책(養兵策)에 일본 엘리트들이 넋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군대 창설 과정에서 독일식 복색과 편제, 특히 상하 계선과 참모를 특징으로 하는 프러시아 군제도를 그대로 도입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후 서서히 식민지화하는 대한제국 황실의 복색에서도 그 편린을 읽을 수 있다. 의술 역시 전승국 독일의 의술을 제일로 쳤다. 이런 전통이 130여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동경대학 의사들의 독일어 선호로 나타난 것이다. 패전국 프랑스지만 법 체계만은 독일과 같은 수준으로 존중, 동경대학 법학부는 종전이 될때까지 독법학과와 불법학과로 나뉘어 왔다. 실로 엄청난 개혁이었다. 개혁의주역들은 간혹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열등한 일본인의 체구를 개량하기 위해 유럽인과 결혼시킬 것을, 미국 유학생 모리 아리노리(森有禮)는 일본어를 전폐하여 영어로 대신할 것까지 주장했다. 가토는 그후 동경제국대학 총장을, 모리는 문부장관을 각각 역임했다. 망발임에 틀림없으나 당시 엘리트의 우국충정 또는 개혁의 열기라 여기면 이해가 가는 망발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불량품목도 함께 수입된다. 일명 「슈리펜 플란」으로 불리는 독일군의 전격(電擊)작전이다. 보불전쟁에 참전한 프러시아군 참모 알프레드 폰 슈리펜백작이 독일군 참모총장 재직시(1891~1906) 수립했던 유럽 제패용 작전이 독일군의 복색에 얹혀 일본에 무비판적으로 수입된 것이다. 몇년 후 1차대전의 주요 전략으로 그대로 전용된 이 전략은 적에게 4면으로 포위당했을 때 아군을 4개 부대로 쪼개 응전하는 기존 전략과는 달리 전 병력을 일단 서쪽으로 밀집시켜 적군의 최정예를 부순 후 그 여세를 몰아 동쪽으로, 거기서 다시 남과 북을 차례로 때린다는 속전속결의 작전이다. 1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군 병력은 150개 사단에 불과했다. 서부전선의 영국·프랑스·벨기에·세르비아군 249사단, 그리고 동부전선의 150개 러시아사단에 좌우로 포위당하는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었다. 독일의 전략은 따라서 유럽 내부에 갈린 전략철도를 이용, 적을 차례차례 격파한다는 내선작전(INTERIOR OPERATION)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략은 그러나 실패로 그친다. 파리는 함락시켰지만 연합군측의 강한 저항으로 시일을 놓친데다 러시아의 진격이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참전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작전의 수입을 놓고 일본군과 독일군 첩보부대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물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유럽에서 실패한 이 작전이 그후 일본에 의해 아시아대륙에서 연차적으로 재연됐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일·러전쟁으로 러시아를 격파한데 이어 중국 대륙에 서둘러 철도를 부설하고 만주국이 세워진다. 태평양전쟁 때는 선전포고 없이 미 하와이를 기습하고 심지어 당시 독일이 주창한 생존권(LEBENSRAUM)까지 그대로 직수입,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하지 않았던가. 지난 11월 11일 11시는 1차대전의 마지막 총성이 멈춘 시각이다. 유럽에서 만 80년전에 멎은 그 총성이 이상하게 일본 열도쪽에 아직도 메아리로 남은 듯 싶어 섬 하다. 숫자의 이상한 나열이나 반복 때문이 아니다. 일본의 재무장 자체가 겁나서도 아니다. 무비판의 열등의식이 재연할 신음소리가 동경대 의사의 독일어 발음처럼 아직껏 둔탁하게 들리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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