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 청두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가 개최됐다. 필자도 글로벌 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을 주제로 한 관련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최근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배우며 우리의 주의를 요하는 몇 가지 시사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상품 및 서비스 생산이 여러 단계로 분화되고 각각의 단계가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비용 경쟁력이 있는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며 단계별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수송기술 FTA 확산으로 GVC 심화
먼저 GVC에 기반을 둔 부가가치 교역의 관점에서 수출에 기여하는 우리나라의 국내창출 부가가치가 여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별로 편차는 더욱 큰데 일부 산업의 경우에는 해당 산업의 전체 수출에 기여하는 국내 부가가치가 40%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우리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교역대국임에도 실질적으로 알짜배기 장사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가치사슬상의 제조 부문에서 생성되는 부가가치가 제조 서비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슬에서 생성되는 부가가치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동일한 사슬 가운데서도 수준별로 부가가치 생성이 차별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알짜배기 장사를 못하는 원인을 글로벌 가치사슬상에서 고부가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전략산업이나 핵심기술이 뚜렷하지 않고 서비스 같은 지식기반 기술 경쟁력이 취약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수송기술의 발달, 전세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확산 등이 GVC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GVC 관점에서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자국 산업과 그에 속한 기업들이 어떠한 사슬을 주도하며 실질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산업들이 GVC상에서 창출해내는 가치나 고용의 질을 고려한 산업전략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국가 차원 융합산업 창출 핵심 전략기술 개발 절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나 전자 산업 등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기술과 지식개발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중장기적으로 GVC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고부가가치 창출 잠재력이 낮은 사슬을 과감히 포기하는 고민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부가가치 사슬로 이동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융합산업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 GVC 확산은 서비스 산업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창조경제의 핵심은 융합에 있다. 즉 핵심기술과 서비스 같은 지식융합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핵심 전략기술 개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미래 관점에서 전략적 국가산업을 제시하고 이에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다시 한번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지만 에너지·의료기기·제약·식품산업 등은 차별적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주요 미래 핵심 전략산업 후보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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