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한 영화 '무뢰한'은 전도연(사진)이라는 여배우가 있었기에 완성된 영화다. 빚더미에 오른 한물간 화류계 종사자이자 살인범의 애인이라는, 언뜻 봐서는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워 보이는 이 여성이 처연하고도 애달픈, 그래서 안아주고 싶은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구체화되기까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냉소를 띠는 짙게 채색된 입술과 달리 항상 무언가를 찾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 일부러 더 크게 열어젖힌 듯한 어깨의 당당함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휘청이는 다리. 김혜경이 품고 있는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은 전도연의 표정과 몸짓·떨림을 통해 조금씩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관찰들이 쌓인 어느 지점, 관객들은 이 비정하기 짝이 없는 정재곤(김남길 분)이라는 남자가 왜 김혜경 앞에서만은 침착함을 잃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김혜경이라는 인물이 저는 많이 안쓰러웠어요. 그녀는 '김혜경이야말로 가장 무뢰한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냉소적으로 차갑게 굴지만 제게는 오히려 마음에 부서질 것 같은 유리 하나를 안고 있는 여자로 보였어요. 사랑에서도 항상 수동적으로 선택되는 삶을 살다가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그걸 얻지 못해요. 솔직하지 못하고 서투른 모습이 안타깝고 아팠어요."
배우는 그런 자신의 해석을 믿고 김혜경을 조금씩 만들어갔다고 했다. 덕분에 김혜경은 정재곤이라는 남자의 시선 속에 대상화된 그저 매력적인 여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그려졌다. 전도연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인물을 팔로해주셨을 때 많이 감사했다. 내가 한 것들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보람도 컸다"고 했다.
자연스레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서는 '역시 전도연'이라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배우는 이 같은 '전도연에 대한 칭찬'에 어느 순간부터 조금 좌절을 느낀다는 의외의 말을 했다.
"사람들이 언젠가부터는 '전도연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하고 궁금해하기보다 '전도연이 어련히 잘했겠어'라고 하더라고요. 영화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선택하는 것인데 '어련히 잘했으리라'는 것은 기대가 없다는 거잖아요.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은 언제나 기쁘지만 관객들에게 기대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조금 슬퍼졌어요."
칸 영화제에 가는 일이 부담에서 즐거움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곳에 가면 저는 여전히 기대를 받는 배우거든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하는 기대들. 그 모습들을 보면 내가 이렇게 치열하게 연기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아직 갈 길이 머니 더 분발해야겠다, 더 진지하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거죠." "아직 하고 싶은 역할도, 해야 할 연기도 많다"고 말하는 배우는 "그래서 무뢰한이 꼭 흥행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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