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 마련 작업이 어렵사리 합일점에 다다랐지만 후폭풍은 매우 거세게 불 것으로 보인다. 특별계정을 만드는 조건으로 야당 측이 내건 부실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 개최를 여당과 정부가 받아들이고 금융위원장 명의의 대국민 유감 표명 등을 수용한 탓이다. 특히 백서 작성 과정에서 정부가 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경우 민형사상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별계정과 청문회 빅딜=치열한 줄다리기 과정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적자금 투입을 하지 않으려 끝까지 버텼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 일각에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단칼에 잘랐다. 공적자금 투입은 곧 부실 책임에 대한 규명과 직결될 뿐더러 정치적으로 부담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공동계정이라는 이름의 '기형 물체'가 나온 것도 공적자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하지만 야당 측의 반대는 완강했다.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정공법을 마지막까지 고수했다. 임시국회 막판 '정부 출연금+공동계정'이라는 타협안은 표면상 여야의 이 같은 입장이 절충점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급한 쪽, 즉 정부가 자신들의 패를 접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야당 측은 특별계정에 투입되는 예금보험료를 50%에서 40%까지 낮추자던 당초 주장을 45%로 하는 것으로 한발 양보했지만 대신 책임 추궁 방법론에서 강력한 수단들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정책 실패 여부를 담은 백서를 발간하고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청문회는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이르면 오는 4월에 열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본지 기자와 만나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차차 원인 규명을 하면 밝혀질 문제"라고 말했지만 당국자들이 무더기로 단죄의 무대에 서는 것은 불가피해보인다. ◇부실 책임 무엇을 규명한 것인가=저축은행의 부실 책임을 어느 선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이른바 '8ㆍ8클럽'에 대출한도를 풀어준 것이 부실을 잉태한 조치였다고 말한다. 당시 금감위 부위원장이 지금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고 당시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김중회 전 KB금융 사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규제완화가 당시의 상황에서는 최적의 판단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부실 책임의 또 다른 포인트는 이번 저축은행 무더기 영업정지 사태의 시발점이 된 부산저축은행의 부실이다. 먼저 지난 2008년 말 부실화한 대전저축은행을 부산저축은행에 인수하도록 한 것이 누구인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당시 금융위원장은 전광우 현 국민연금 이사장이었고 감독권한은 김종창 현 금감원장이 쥐고 있었다. 당국에서는 당시 공적자금 투입을 피하기 위해 대전저축은행을 기업은행이나 국민은행에 넘기려 했지만 이들이 모두 거절하자 어쩔 수 없이 부산저축은행에 떠넘겼다. 이 조치가 강제로 한 것인지, 자발적인지에 대한 부분도 규명해야 할 문제다. 세 번째 포인트는 인수를 시킨 후 감독당국의 관리 책임이다. 대전저축은행은 부산에 인수된 후 총자산이 1년도 안 돼 무려 1조원이나 늘었다. 이중 상당 부분이 문제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이 자신들의 PF에 대전저축은행 등을 공동 대출 형식으로 참여시킨 데 따른 것이다. 이런 행위를 하는데 감독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대전저축은행 문제가 터진 후 PF 증가분을 보고 우리도 놀랐다. 감독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화가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금융감독원 측은 입법장치가 제대로 안 돼 감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PF대출의 한도를 정해주는 입법조치가 늦게 됐다는 얘기다. 이 부분을 놓고 금융위와 금감원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의 책임선상에는 김종창 금감원장과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이 서 있다. 여기에 이번에 저축은행들의 무더기 영업정지 과정에서 당국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발표 조치가 뱅크런(예금인출)을 확산시키고 영업정지 대상을 확대시킨 것 아닌가에 대한 부분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고위관료들 대규모 청문회에…소송전 가능성도=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고위관료들은 무더기로 청문회에 서야 하고 직간접적으로 단죄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정책 실패로 단죄 무대에 선 사람은 외환위기 책임이 부과된 강경식 전 부총리와 외환은행 부실 매각 책임에 휩싸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사법 당국의 판단이 내려졌다. 이번에도 청문회 과정에서 정책 실패가 규명된다고 할지라도 직접적으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책 실패가 확정될 경우 의외의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책 실패가 저축은행의 부실을 잉태하고 이로 인해 자신이 맡긴 예금이 날아갔을 경우 예금자들로서는 민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를 비롯한 부실 책임 규명을 불러오는 공적자금 투입을 정부와 여당이 극도로 꺼려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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