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A치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이 코끝으로 밀려온다. 소독약이나 신경치료 때 쓰는 약제 등이 섞인 이른바 '치과 냄새'가 두려운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주기적으로 실내에 분사되는 향 입자가 긴장된 마음을 다독여주기 때문에 치료 받는 동안 평온한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향을 이용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 곳은 병원뿐만이 아니다.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ㆍ서대문구청 등에서는 편백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을 실내로 가져와 시민들이 편안하게 민원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업은 물론이고 병원ㆍ관공서 등에서까지 이처럼 향기에 신경 쓰는 이유는 뭘까. 사람이 가진 오감 가운데 후각은 직접적으로 뇌에 영향을 끼쳐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감각이라고 한다. 이처럼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고급스럽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보니 향기의 활용 잠재력과 경제적 효과가 각광을 받고 있다.
치약과 샴푸ㆍ세제 등 생필품은 기본이고 화장품ㆍ방향제 등에 이르기까지 향이 없다면 사용하기 불편할 제품들이 주위에 수두룩하다. 향료 즉, 향을 내는 물질을 활용한 제품의 국내 시장규모만 해도 연간 4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향 관련 시장도 세분화되고 발전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도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향 관련 제품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스몰 럭셔리 효과'와 '힐링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한층 관심을 끌고 있다.
천연향기 전문기업인 에코미스트의 이기현 대표는 "향은 심리적인 안정을 줘 대인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주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등 유무형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며 "불특정 다수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매장에서는 커피향 같은 특정 향을 사용한 후 매출이 향상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향 관련 산업이 다양화ㆍ세분화되면서 향도 추출대상에 따른 식물성과 동물성, 만들어지는 방법에 따른 인공향과 자연향 등 종류별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대체적으로 자연향이 인공향에 비해 비싼 편이며 희귀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딴 3,000송이의 다마스크로즈에서 얻어낸 1㎖의 불가리안로즈향은 가격이 100만원을 웃돈다. 고래의 장에서 나온 물질로 수렵이 금지된 후 '바다의 로또'로 불리는 앰버그리스(용연향)는 1파운드(약 450g)에 1,1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제품에는 한 가지 향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향을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 그 제품만의 개성을 만들어낸다"며 "향 관련 산업은 인테리어 수단, 마케팅 도구, 나아가 정신적 만족감과 치유 효과를 주는 재료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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