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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사과하지 않는 사회

조희연, 당선무효형에 배심원 비난… 이완구는 밑도 끝도 없이 "송구" 만

박대통령 대국민담화도 민심 저버려

피해자에 사과 인색한 우리 사회

사죄 않는 아베에 화낼 자격 있나 한 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 보고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최근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선거법 위반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첫 반응은 배심원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는 "비전문적이고 법률을 잘 모르는 배심원들이 미시 법률적인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법원이 잘못 판단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가 재판에 부쳐진 것은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 측은 법정에서 "뉴스타파 기자의 영주권 의혹 제기 트윗이 수천번 리트윗되는 등 파장이 커져 해명을 요구한 것"이라고 정당함을 주장했지만 뉴스타파 기자가 고 후보의 해명을 듣고 사과한 뒤에도 조 교육감은 계속 의혹을 제기했다. 그가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놓고 이제 와서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이번에 자신의 발목을 잡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위헌심판을 신청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은 데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바른 자세다.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판단 주체인 법원을 무시하면 더 이상 한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없지 않나.

이완구 전 총리는 27일 열린 이임식에서 "최근 상황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 이후 이 전 총리가 연일 해명과 말 바꾸기를 반복해온 사실을 계속 추적해오지 않았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사과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일이다. '최근 상황'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표현 대신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거론해야 비로소 사과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과를 기다린 대상은 박근혜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의 인사는 대부분 박 대통령이 중하게 써온 사람들이다. 이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순방 도중 사의를 표명하고 관저에 칩거해 국정 공백까지 초래했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와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는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불을 새롭게 지피고 있다. 그는 사과를 유감으로 대체한 뒤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오늘날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성완종 사건'의 근본 원인을 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부적절한 사면으로 규정하며 수사를 지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민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로 예정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과거사에 대해 아마 사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 문제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뺀 채 끝내 인신매매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밝히지 않은 것만 봐도 사죄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사죄하지 않는 데 대해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사과에 인색하면서 남한테만 사죄를 요구하는 게 영 불편하다. 사과받아야 할 사람이 사과할 사람에게 자꾸만 사과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은 더 불편하다. 사과할 사람이 알아서 사과해야지 사과받아야 할 사람이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다그쳐서야 되겠는가.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과는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이제 됐습니다 할 때까지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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