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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많았던 인구 변천사

[인구시계 5000만 시대] <1> 대한민국 인구지도가 바뀐다

50년대 -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80년대 - 하나씩만 낳아도 초만원

2011년- 출산율 1.24명 세계 최저


건국 초기 2,000만명 수준이던 우리나라 인구는 5,000만명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풍파를 겪어왔다.

한국전쟁에 따른 인구감소→베이비붐 세대→출산억제 정책→출산장려책 등이 우리나라 인구 역사의 큰 물줄기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될 당시 약 1,614만명이었던 남한 인구는 건국 직후인 1949년 2,019만명으로 늘어났다. 1945~1949년은 연평균 인구 성장률이 6% 수준에 육박,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인구 성장률을 보였던 시기다. 해방 직후 일본ㆍ만주 등에서 살던 동포와 2차 세계대전 때 강제 동원됐던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왔고 북한에서 귀환민이 대거 남한으로 유입됐다.

하지만 이후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은 신생 대한민국의 인구 증가를 막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1950~1953년 동안 약 130만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후 1953년 휴전이 성립되면서 출생률은 급격히 높아진 가운데 사망률이 낮아지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이다. 1955년부터 시작돼 1960년대까지 이어진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우리 경제의 주축이 됐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양상의 인구 변천기를 맞게 된다. 출생률과 사망률이 함께 떨어졌지만 출생률 감소폭이 사망률 감소폭보다 더 커 자연인구 증가율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연평균 인구성장률은 1960~1965년 2.79%에서 1980~1985년 1.37%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출생률 감소는 1962년 국가적 차원에서 최초로 실시한 출산억제 정책의 힘이 컸다. 정부는 당시 과잉인구가 경제성장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출산억제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1960년대 초반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는 표어로 시작된 가족계획은 셋에서 둘로, 다시 한 자녀 갖기로 목표가 수정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에 단산하자(196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 등의 표어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1980년대 우리나라 출산 정책에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1983년 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 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전세계적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하락했고 정부의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이 맞물리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산아제한을 통한 인구억제정책이 공식 폐기된 것은 35년 만인 1996년이다. 1960년 가임 여성 1명당 6명꼴이던 출생아가 1.75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4명까지 떨어져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출산장려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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