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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9부. 성장 이끄는 복지체제로 <1> 일에 짓눌린 한국

근로시간 OECD 최고… '일중독' 못고치면 고용 질적성장 없다<br>야근·휴일근로 등으로 주 68시간 근무 예사<br>노동량 비해 효율 떨어지고 근로자 건강 해쳐<br>노사 점진적 노동시간 단축 '윈윈' 해법 시급

국내의 한 완성차 업체에서 직원들이 특근 작업에 한창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00시간이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근로 시스템을 구축해 근로자의 여가 확보와 고용의 질적 성장을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경제DB


지난 2004년 인천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업한 H씨(40). 기어 제조 업무가 담당이었던 H씨는 매일 오전7시30분에 출근해 작업장 청소와 같은 잡무를 마친 뒤 8시가 되면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잔업이 없는 날이면 오후5시에 퇴근했지만 이런 날은 한 달에 많아야 1~2번이었다.

H씨는 "잔업까지 하고 오후8시30분이 돼야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공장에 있는 시간만 꼬박 13시간이었던 셈"이라고 회고했다.

한 달 간격으로 주야 2교대를 실시하는 생활을 7년쯤 하자 신체리듬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급기야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H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재작년에 회사를 그만뒀다"며 "그때보다 월급은 적지만 교대근무가 없는 사업장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일하는 대한민국.'

한국을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 중 하나다. 단기간에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에게 한때 이 수식어는 찬사의 표현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동안 가족의 안위와 국가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개인적 삶의 희생은 감수하는 DNA가 한국인의 유전자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가나 기업의 성장 못지 않게 개인의 행복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장시간 근로는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에 따라 과거 영광스러운 훈장이었던 수식어도 이제는 벗어던지고 싶은 오명으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일에 중독된 뿌리 깊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현재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6시간이었다. 이는 OECD 평균(1,693시간)보다 423시간이나 많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주일간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이며 여기에 연장근로 한도를 포함하면 52시간이다. 하지만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고 있어 1주일에 최대 68시간(주중 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을 일해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장시간 근로 업종으로 분류되는 한국GM·르노삼성·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의 주중 평균 근로시간은 55시간 이상으로 전체 산업 평균인 41.3시간보다 14시간 이상이나 많다.

반면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을 뜻하는 HPV는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2009년 국내 완성차 업체 A사의 경우 한국 공장에서의 평균 HPV는 31.7시간이지만 미국·중국·인도 공장의 경우 각각 16.5·20.2·21.5시간에 불과하다. 국내 근로자들의 노동의 양이 질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비효율성만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근로는 노동의 질뿐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 또한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산업안전연구원이 펴낸 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근로자의 재해 비율이 40시간 이하로 일하는 경우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장시간 근로 행태가 유발하는 비효율과 부작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자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자는 입장을 피력해왔고 국민행복 시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근로시간 축소라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이미 의견 일치를 본 상황이다.

세부적인 각론에서 차이가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 관련 법안만 새누리당의 이완영·김성태 의원, 야당의 심상정·한정애 의원 등 4건이 발의돼 있다.

문제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각기 다른 셈법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재계에서는 갑작스러운 근로시간 단축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연장 근로가 불가피한 업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특히 신규 인력 채용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은 존립 기반 자체를 위협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연장 근로는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성을 조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며 "강제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면 대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통해 물량을 조달하면서 협력업체의 연쇄 도미노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의 우려와는 별개로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전제로 임금 보전을 내세우고 있어 합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초과 근로 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초과근로 할증률이 한국은 일본·독일·프랑스(25%)의 2배나 된다. 과도하게 높은 할증률이 오히려 노동계로 하여금 넉넉한 소득의 확보 수단으로 초과근로를 역이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실제로 노사정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만 포함시키면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3% 이상 감소하고 연간 급여는 3,556만원에서 3,090만원으로 466만원이나 감소하게 된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만큼 임금을 그대로 비례해서 축소하면 근로자들의 생활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으니 일정한 보전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뿐 아니라 기업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인 장시간 근로 관행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산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근로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증대시킴으로써 근로자 임금 보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제도로 인해 경제주체가 절벽에서 추락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연착륙하기 위한 일종의 매트리스(안전판)로서 점진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시키거나 노사 합의에 의해 특별연장근로를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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