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케냐 나이로비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관세철폐 협상이 타결됐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주요 53개국 간 정보통신기술(ICT ) 제품을 무세화하는 정보기술협정(ITA·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 확대 협상이 3년여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타결된 것이다. 최근 우리 수출에 한랭전선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총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주요 201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나이로비발 훈풍은 정말 반가운 뉴스다.
이번 ITA 확대협상은 기존 ITA 협정 발효(1997) 이후 처음이자 약 20년 만에 타결한 다자 간 관세철폐 협상으로 WTO의 다자 간 무역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침체된 세계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ITA 협정의 역사는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IT 제품의 무역 촉진을 위해 WTO 전 회원국이 참여하는 협상과 별도로 일부 관심 회원국만이 참여한 가운데 주요 IT 제품에 대한 무세화를 추진하게 됐다. 1997년 발효된 ITA를 통해 반도체·컴퓨터·휴대폰 등 주요 203개 IT 제품의 관세가 철폐됐으며 현재까지 총 82개국이 이 협정에 참여하고 있다. ITA는 시장개방을 통한 무역확대 효과를 증명한 대표적인 협정으로 무세화를 통한 해당 IT 제품의 자유로운 무역확대는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초래해 세계 ICT 및 연관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ITA 덕분에 1996년 1조2,000억달러에 불과하던 ICT 제품 교역규모는 현재 5조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ITA 협정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ICT 혁명의 급진전으로 기존 ITA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IT 제품군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들 제품에 대한 추가 무세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2012년 5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일본·중국 등 53개국이 ITA 확대협상을 시작했다. ITA 확대협상은 관세철폐 대상 IT 품목을 최대화하려는 미국·한국·대만 등 IT강국과 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이차전지 등 전략산업 보호를 위해 무세화 품목을 최소화하려는 중국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2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간 양자협상이 타결되고 53개 회원국이 합의함에 따라 이번 제10차 WTO 각료회의에서 ITA 확대협상이 타결됐다.
이번에 추가된 HS 6단위 기준 201개 품목은 전기기기·의료기기·계측기기 등을 포함해 전 세계 상품교역의 10%가량을 차지해 무세화를 통한 IT 제품의 무역촉진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ITA는 관세철폐 혜택이 참가국뿐 아니라 WTO 회원국 모두에 적용되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기업들의 노력과 혁신이 큰 역할을 했지만 ITA 같은 우호적 무역환경이 크게 뒷받침해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 ITA 제품범위 확대도 우리 IT 산업과 연관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 중요한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ITA 확대협상 타결에 따라 우리 수출은 5억9,000만달러, 수입은 5억7,000만달러가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추가 품목 리스트에 영상기기 부품, 각종 카메라, 셋톱박스, 초음파기기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품목들이 포함돼 있어 발효 이후 우리의 수출확대가 기대된다. 또 한중 FTA시 양허에서 제외된 품목도 일부 포함돼 관련기업들에는 나이로비발 훈풍이 연말의 값진 선물로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WTO 도하라운드 협상이 지금까지 표류하면서 다자무역 체제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약화된 상황에서 ITA 확대협상 타결은 향후 WTO 다자 간 협상 추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쪼록 참여국의 국내 절차가 조속히 완료돼 내년 7월부터 무세화가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우리 IT 산업 수출도 훈풍을 타고 세계무대에서 재도약하기를 바란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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