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58ㆍ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올 여름 휴가를 포기했다. 당초 지난 7월 말 지방의 고택(古宅)을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 피해가 나면서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다 아예 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장관은 6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에서 이뤄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을 돌아보는 게 휴가 아니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자리 잡은 뒤 일생을 농업에 매진한 이 장관은 농촌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든이 넘은 노모가 지금도 고향에서 직접 호미를 들고 농사에 매달리고 있을 정도다.
장관의 농촌 사랑과 비례하는 것일까. 최근 이 장관이 짊어진 짐은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 대외적으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진행되고 있고 쌀 관세화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관세 빗장이 풀리면 중국의 값싼 농산물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내년부터 농업 관련 예산이 대거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 동부그룹이 토마토 농업 생산에 참여했다가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일도 있었다.
이 장관은 "농업과 농촌은 국민들의 일터이자 삶터이며 동시에 쉼터도 될 수 있는 공간인데 지금은 활력이 떨어져 버려진 공간처럼 취급된다"며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되살리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만드는 부분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 민관학계를 두루 아우른 '국민공감농정위원회'다. 취임 150일을 맞은 이 장관이 그동안 가장 잘했다고 꼽히는 게 이 위원회를 만든 일이다. 유통구조 개선, 기업의 농업참여 가이드라인 등 굵직굵직한 정책이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마련됐다.
이 장관은 "취임 이후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농정의 방향과 비전을 담기 위해 먼저 농민과 학계 전문가 등과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 과정에서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이달 말에는 위원회 활동을 바탕으로 '농업ㆍ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도 내놓을 예정이다. 향후 5년간 농정의 주요 흐름이 여기에 담긴다. 그는 "중장기 계획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등대나 신호등 같은 역할을 해줄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15만가구에 달하는 농가 정책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갈래로 대응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먼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규모를 갖춘 전업농에 대해서는 경쟁력 강화를 추구할 방침이다. 이런 농가들은 품질수준과 친환경기준을 높여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으로 수출을 늘리는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게 이 장관의 계획이다.
중소농에 대해서는 단순 농업생산에서 벗어나 유통ㆍ관광을 아우른 6차산업화를 제시했다. 6차산업은 1차산업인 농업에 2ㆍ3차산업을 접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개념으로 이 장관이 강조하는 농촌의 미래 방향이다. 그는 "예를 들어 하나의 계곡이 있다고 하면 이 지역에서 과수농사를 짓는 것에 더해 유통까지 농민이 직접 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서 "이 브랜드를 바탕으로 관광까지 결합할 수 있다면 6차산업의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어 "농촌의 부족한 인적역량을 귀농ㆍ귀촌, 재능기부 등 외부 전문가로 보완해가면 새로운 서비스 분야를 발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전체 농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고령농에 대해서는 촘촘한 사회복지망 구축을 약속했다.
이달 말 1차협상 완료를 앞둔 한중 FTA에 대해 이 장관은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기존에 FTA를 맺었던 미국이나 칠레 등과 달리 중국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기후와 토질 등이 유사해 파괴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민감 또는 초민감 품목을 최대한 확보해 농업을 지킬 수 있도록 방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특히 (배추ㆍ양파ㆍ고추 같은) 밭작물과 과수에 우선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논농사는 상대적으로 전업농이 많고 기계화도 많이 돼 있어 경쟁력이 있는 반면 밭농사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작물에 대해서는 FTA 적용을 최대한 늦추고 그동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 장관은 말했다. 한중 FTA에 적용되는 농산품은 약 1,500개 정도인데 농업계는 이 품목 중 몇 개가 관세인하가 적용되지 않는 민감품목에 포함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FTA 자체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이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유자차나 분유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며 "우리도 적극적으로 노력해 품질ㆍ위생 측면을 강화할 수 있다면 수비뿐 아니라 공격으로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농업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 장관은 중복지원이 이뤄지거나 비효율적인 직불금제도를 이르면 올해부터 손질해나가기로 했다.
그는 "쌀 소비는 점차 줄어드는데 쌀에만 보조금이 지나치게 쏠리는 문제점이 있어 품목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직불금이 7개에 달하는데 이것을 좀 다듬어야 할 것으로 본다"며 "경지면적을 기준으로 보조금이 지급돼 대농(大農)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문제도 있어 차등대우를 한다든지 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다만 직불금 자체는 장점이 많아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을 고민해야지 축소나 폐지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스위스의 사례를 보면 직불 비중이 73%에 달해 23% 수준인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한 뒤 "농업인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기간산업인 농업이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직불금을 '퍼주는' 방식으로 이어갈 것이 아니라 친환경 농업을 하면 직불금을 준다든지 경관을 보전하면 지급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공익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올 들어 농산물 가격은 단기적인 급등락을 나타낸 품목도 있었지만 대체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 역시 9개월 연속 1%대의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장관은 농산물 가격 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취임 이후 내놓은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이 조금씩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급조절 매뉴얼은 농민과 소비자 유통업체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월별로 주요 농산물의 중앙값을 정한 뒤 이보다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리면 물량을 풀거나 줄여 가격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그동안에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뚜렷한 기준이 없어 오히려 가격 급등락을 부추긴 경우도 있었다"면서 "구체적인 기준과 시스템을 만든 게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했다. 6월의 일이다. 당시 조생종 양파 수확을 앞두고 ㎏당 700원 정도가 정상인 양파가격이 1,600원까지 올라 양파 수입을 늘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 장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가진 통계를 보니 난생종 양파 수확이 시작되면 수급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위원회를 모아 설득했다"며 "실제로 현재 가격은 ㎏당 770원으로 안정대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이때 수입을 늘렸다면 양파가격 폭락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 장관은 "현장에 가보면 매뉴얼에 대해 농민들이 모두 칭찬한다"면서 "매뉴얼이 좀 더 정확히 작동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농민과 유통단체에 줘야 하고 이런 점을 직원들에게 매우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조장과 관광 연계… 발상 전환 강조하는 전통주 박사 서일범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