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치부심하던 그는 지난 7월 드디어 KB금융의 '넘버원'이 됐다. 금융 관료로 있던 때의 생각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하지만 좋은 날은 잠시였다. 잇달아 터지는 악재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임 회장의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뱅크오브센터크레디트(BCC) 부실과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이 터지더니 자존심이 걸려 있던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는 같은 관료 출신인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차순위의 위치에서 NH와 정부의 협상이 깨지기만 기다려야 할 처지다.
물론 은행건들은 임 회장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전임자의 일이라는 점에서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임 회장과 큰 연관 관계는 없다. 그래도 썩 개운치는 않다. 3년간 KB금융 사장을 지낸데다 BCC 문제는 지주에도 수차례 보고돼왔기 때문이다.
더 아쉬운 것은 '임영록의 색깔'로 화끈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사고 수습하기도 벅찰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투증권 인수전은 이런 점에서 회사 분위기를 바꿀 기회였다는 점에서 아쉽다.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우투증권을 인수하고 자체 사옥만 만들면 KB 역사에 남을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배임에 대한 우려로 우리아비바생명과 저축은행에 베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과 ING생명에 이어 또 한 번의 인수합병(M&A)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상처가 적지 않다.
금융계에서는 임 회장이 내부 추스르기에 나서고 새로운 먹거리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행 일이라도 KB의 큰 어른답게 직원들의 기를 살리고 내부통제를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오랜 관료생활의 티를 벗고 진정으로 은행원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줄기에서 KB와 관계가 좋은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증권이나 매물로 나올 대우증권에 대한 인수 준비작업을 단단히 해놓아야 한다는 말이 많다. 추가적인 M&A 실패는 치명적이다.
기업금융 활성화를 포함한 은행 영업방식 개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B는 은행 비중이 워낙 크다. 소매금융을 강조하는 임 회장과 달리 오갑수 국민은행 사외이사는 최근 이사회에서 "수익창출을 위해 기업금융을 강화해야 한다"고 정반대의 의견을 밝혔다.
전·현직 국민은행 고위관계자들도 오 이사와 같은 생각이다. 소매금융만으로는 신한 등과 경쟁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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