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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여력제 허실/“현실무시한 졸속행정”(보험정책 앞이 안보인다)
입력1997-08-14 00:00:00
수정
1997.08.14 00:00:00
이종석 기자
◎신설기존사 실적 동일선상서 평가/적자보전도 바쁜데 지급여력 확보까지/신설사 수용어려워 제도골격 보완으로 생보사족쇄 풀어야『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독이 채워집니까.』
지급여력제도는 보험업계 내부에서 이른바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통한다. 더 이상 쏟아부을 돈도 없지만 설사 증자를 한다해도 내년에 또다시 부족해질 것이 뻔한데 뭣하러 매년 거액을 투자하겠느냐는 비아냥이다.
지급여력제도는 신설 생보사의 재무건전성 확보와 계약자보호라는 명분 아래 지난 94년 6월 도입됐다. 생보사 경영이 악화돼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사로 하여금 항상 일정수준의 자금을 확보토록 하자는 것이 주요골자다. 계약자보호라는 대의에 비추어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급여력제도는 출발단계에서부터 몇가지 원초적인 문제를 안고 도입됐고 결과적으로 재경원의 보험정책을 두고두고 꼬이게 만드는 악재로 전락해버렸다.
우선 수십년의 역사를 거쳐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기존 생보사와 이제 막 영업에 나서는 신설 생보사를 동일한 기준선상에 놓고 실적평가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신설사들로서는 벅찬 경쟁이 아닐 수 없었고, 결국 보험사별로 1천억원대 이상의 지급여력 부족분을 떠안게 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금융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이 각각 지난 93년과 96년에야 우리의 지급여력과 유사한 RBC(위험대비자산보유)제도를 도입했고, 2백여년의 생명보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도 지난 81년에야 책임준비금의 4% 적립을 의무화시켰던 전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너무 단기간에 졸속적으로 제도를 도입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도입시점에도 문제가 있다. 지급여력제도가 도입된 94년은 신설사들의 사업비 이연상각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사업초기의 투자비용이 한꺼번에 손익에 반영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때맞춰 지급여력제도가 도입되다 보니 신설사들의 자금부담은 그만큼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적자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마당에 지급여력을 제대로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지급여력 확보를 위한 증자부담은 신설사들의 손발을 묶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지급여력 부족액을 채우기 위해서는 증자가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 이는 대주주들의 반발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신설사들로서는 부득이 초과사업비절감과 금융형상품 축소등 색다른 자구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보험사의 영업무기인 사업비 축소로 이어져 일선 영업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신설사들은 지급여력 때문에 영업이 위축되는가 하면 영업악화로 인해 또다시 지급여력 부족액이 늘어나는 묘한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는 셈이다.
실제 제도 시행 첫해인 지난 95년 한덕생명 등 7개사가 1천9백25억원의 지급여력 부족을 기록한데 이어 ▲96년 17개사(1조2천39억원) ▲97년 18개사(1조4천4백5억원) 등 신설생보사의 지급여력 부족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급기야 지급여력 부족규모가 5백억원을 넘어서는 일부 생보사에 대해 금융기관 사상 처음으로 사업규모 제한이라는 초강경 제재조치를 동원하고 나섰지만 어느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생보사 지급여력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이상주의 행정의 표본으로 비난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기본골격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급여력제도는 마치 풀리지 않는 족쇄처럼 계속 정부와 생보사의 목을 조일게 뻔한 상황이다.<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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