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회의가 겁난다. 표심 때문인지 정부를 파트너로 보는 것 같지 않다.” 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경제정책을 둘러싼 당정간 갈등이 잇따르자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정회의가 ‘토론의 장’이 아닌 것은 고사하고 ‘정부에 대한 압박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래서야 정책운영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말도 흘러나온다. 당정간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은 국민연금제도 개선방안. 당초 정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보험급여 수준 인하, 보험료율 인상’을 골자로 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문가들도 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23일 당정협의에서 정부는 이 같은 정부안을 채택해달라고 여당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표심을 우려해 보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정부안 수용불가 의사를 밝혔다. 기금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기획예산처가 폐지방침을 밝힌 응급의료기금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에서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응급의료를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며 반대해 결국 유지하기로 했다. 장애인 LPG 차량에 대한 지원방안을 놓고도 현행 ‘보조금 지급’을 주장하는 정부와 아예 세금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여당이 맞서고 있다. 1가구 1주택 비과세 폐지를 놓고 벌인 당정간 해프닝도 예외는 아니다. 1가구 1주택 비과세 폐지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장기 조세개혁 과제로 추진해온 사안이다. 아울러 재정경제부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중장기 과제로 추진한다고 보고했다. 대통령 업무보고까지 마친 사안이 여당의 표심을 우려한 반대의사에 하루 새 ‘없던 일’이 된 것이다. 문제는 당정간 갈등에서 정부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선거를 앞두면서 사전에 당과 협의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하면 당으로부터 강한 항의가 들어온다”며 “당정회의가 협의가 아닌 당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하는 수단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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