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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경제의 딜레마/서건일 중기연 초빙연구위원(여의도 칼럼)
입력1997-11-08 00:00:00
수정
1997.11.08 00:00:00
서건일 기자
환율이 연일 치솟고 증시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실 대기업의 부도사태는 여전히 꼬리를 물고 한국경제에 대한 불신과 신용추락, 그로 인한 해외투자가들의 이탈행진이 계속되고 있다.상황이 이처럼 악화된데는 정부나 기업 금융권에 다같이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위기와 책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언제나 정부다. 위기를 인식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기능해야 할 시장의 중심에는 정부의 비전과 지도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적 위기를 바라보는 많은 외국투자가 경제전문가들의 눈도 그렇다. 그들은 당장 나타나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적표나 위기자체 보다는 그것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정부·지도자의 의지와 능력에 더 깊은 관심을 쏟는다. 그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견해나 이탈은 대부분 한국경제현실이 어렵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미래가 미덥지 못하다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기업인의 경제마인드가 가라앉고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흔들리는데도 무모한 낙관론으로 손을 놓고 있다면 누가 누구를 믿으며 무슨일을 하겠는가. 불황의 심화나 여건의 악화가 문제가 아니다. 일관된 정책과 해결책 제시, 지도력의 발휘가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정부는 뭘했는가. 지도력의 부실은 누가 책임지나. 부실기업 정리문제는 실기한지 오래다. 국가 경쟁력 강화니 구조조정이니 하며 떠든 때가 언젠가. 그동안 엉뚱하게 한보와 같은 부실기업을 얼마나 많이 키워 놓았나. 부도사태가 꽝꽝 터지자 모두가 나몰라다. 무책임한 시장방임주의에 사로잡혀 그냥 몇달이 지났다.
부도 도미노현상에 금융위기만 증폭되었다. 부실을 자유스럽게 정리할 수 있는 질서나 시장이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위기를 관리한다고 나서고 보니 이번에는 무원칙한 인위적인 시장개입이란 비난을 사게됐다. 대기업 하나가 쓰러지면 수백 수천개의 중소기업이 연쇄피해를 입는다.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무책임한 정책의 실패를 변명하거나 포장하지 말라. 경제기초가 튼튼하다거나 동남아 멕시코와는 다르다는 소리도 제발 그만하라.
부디 더 이상 정치적 의사로 금융이 결정되고 기업이 죽고사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한국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 딜레마를 해결할 우리의 지도자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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