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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24일 오전9시55분께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대검찰청사에 도착했다. 정 회장은 이미 포진해 있던 100여명의 취재진으로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청사 민원실 앞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출두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검찰에서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준비된 어조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민원실 문을 통해 청사로 들어갔다. 정 회장은 이날 평소보다 눈에 띄게 어두운 표정이어서 검찰 수사로 인한 중압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로이터ㆍAP 등 외신 기자들도 나와 현대차 수사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지난주 정의선 사장 소환 때와 달리 현대차 노동자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차분한 분위기에서 정 회장 출두가 이뤄졌다. 정 회장은 대검청사에 도착한 후 1110호 조사실로 직행해 조사를 받았다. 1110호는 정 사장이 지난 20일 18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거물급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던 이른바 ‘VIP룸’인 1113호실은 압수물로 가득 차 있어 1110호실을 택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피의자 심문 역시 부자가 동일한 검사에게서 받았다. 지난주 정 사장 심문을 맡았던 최재경 대검 중수1과장과 이동렬 검사가 정 회장 조사를 분담해 진행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정 회장이) 수사관들과 의사소통도 잘 되고 있으며 조사를 잘 받고 있다”고 전했다. 채 기획관은 또 “비자금이나 기업 관련 비리라는 게 경영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일 아니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입장에서 그걸 모른다고 진술하면 앞뒤가 안 맞지 않느냐”고 반문해 정 회장이 일부 혐의를 시인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 측은 고령인 정 회장의 건강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심문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2시간 조사를 받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식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변호인들과 접견도 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정 회장은 점심으로 배달된 설렁탕을 먹었으며 “식사는 잘 하셨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검찰은 정 회장이 고령임을 감안해 정 사장보다는 일찍 귀가시킨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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