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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싱 롱’/임종건 부국장겸 사회부장(데스크 칼럼)
입력1997-08-08 00:00:00
수정
1997.08.08 00:00:00
임종건 기자
대한항공 801편기의 괌 추락참사사건이 대서특필된 7일자 서울경제신문 1면에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재벌기업들의 잇따른 좌초로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 그같은 국가 신인도하락은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신인도 추락기사에 겹쳐진 대한항공기의 처참한 잔해는 「한국의 추락」을 응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대한항공기 참사는 이제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인재와 천재가 겹친 사고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그동안에도 수차례 국제적인 대형사고를 냈다.
분단국 국적기의 비운이랄까, 정치적인 수난이 유난히 많았다. 78년 소련 무르만스크 불시착사건, 83년 소련전투기에 의한 사할린상공피격추락사건, 87년 김현희에 의한 버마영해상공 폭파추락사건 등이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다.
이들 사고는 냉전시대 국제정치 역학관계가 전면에 부상되면서 조종사의 실수나 승무원들의 보안의식 결여 등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희석되곤 했다.
그러나 이 사건들도 알고 보면 승무원들의 실수나 안일이 근본 원인이었다.
이번 사고는 정치성이 배제된 국내항공사의 사고로는 최악의 것이다. 대한항공은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사고를 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항공기사고가 많고 운송규모 세계2위, 승객수송면에서도 세계10위권의 항공사로서 그만한 사고는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억지 위안」이라도 삼고 싶었던 것이 많은 한국인들의 정서였을 것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통계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의 70%는 인간요소(Human Factor)에 원인이 있다. 계기고장이나 자연조건보다 승무원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태반인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항공기 사고에서 인간요소를 다시 봐야 한다. 갑작스런 기상악화, 공항의 유도장치고장 등이 사고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사람의 잘못, 즉 운항스케줄의 잘못(Mis Schedule)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고 비행기의 비행일지를 보면 최근 1주일간 숨돌릴 틈도 없이 운항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당일엔 서울∼제주를 왕복운항한 뒤 1시간 남짓 사이에 괌으로 출발했다. 기계에도 휴식이 있어야 한다. 너무 무리하게 부리면 피로가 쌓이게 된다. 금속피로(Metal Fatigue)라는 용어가 비행기사고에서 연유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투기의 경우 비행후 3시간이내에는 다시 띄우지 않는다. 수백명의 인명을 실어 나르는 여객기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의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비행기를 쉬게 한다는 것은 안전상의 이상유무를 찾아내기 위한 정비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측은 규정된 운항시간마다 점검을 했으나 이상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시간 남짓 사이에 기내청소나마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기체 스케줄이 이런 상태였을때 승무원 스케줄은 어떠했을까. 사고기 조종사는 괌노선에 별로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정규비행이 아니라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투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주기종은 에어버스였다.
물론 그는 보잉 747여객기를 조종할 자격을 갖추기는 했다. 그는 사고직전 4일동안 17시간을 연속운항해 피로가 누적된 몸이었다.
비행수칙에는 아무리 경험이 많은 조종사라 해도 기종이 다른 여객기를 조종하거나, 초행길은 물론 오랜만에 가는 공항일 경우 사전에 시뮬레이터비행 등을 통해 충분히 현지사정을 숙달시킨 뒤 투입토록 하고 있다. 예를들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다니던 조종사는 뉴욕의 케네디공항으로 막바로 갈수없다. 가더라도 경험자와 함께 가고, 먼저 낮에 가본 뒤 밤에 가고 하는 식으로 공항의 지형지물을 완전히 숙달한 뒤에 조종간을 잡게 한다.
바뀐 기종에다 피로누적속의 갑작스런 투입, 악천후 칠흑속의 착륙이 「인간요소」에 의한 미스스케줄이 아니었는지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
비행수칙은 승무원들만 지킨다고 되는게 아니다. 항공사 경영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안전이 이윤」이라는 투철한 인식을 가져야한다.
휴가철을 맞아 가족과 함께 오붓한 휴식을 취하고, 어른에게 효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착한 이웃들을 생죽음시킨 항공사 관리자들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사고 여객기의 조종사가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섬싱 롱(Something Wrong:뭔가 잘못됐다)」이었다. 그가 미처 밝혀내지 못한 「잘못된 것」을 밝혀내고 시정하는 일은 산 자들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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