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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 묶여 꿈 못키우는 기업은행

예산·신규인력 충원 등 통제로 시중銀과 경쟁서 힘겨운 사투<br>대통령 칭찬 무색… 이대로는 세계 100대 은행 진입 불가능

기업은행은 지난해 신입 행원 220명을 선발했다. 은행을 나가는 인력과 전문인력 수요 등을 감안할 때 기업은행에 필요한 연간 신규인력은 500명 수준이다.

그런데 기업은행은 절반만 뽑아야 했다. 공기업 개혁 바람 속에 난데없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인력충원에 통제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논리적 타당성은 전혀 없었다. 그저 공공기관에 지정돼야 개혁을 하는 것이라는 관료들의 공허한 정책논리에 휘말렸다.

그 사이 시중은행들은 명예퇴직과 신규채용을 통한 조직개편에 나섰다. 공공기관에 들어간 기업은행은 직원들의 복지 혜택은 물론 경영상의 모든 행위가 사실상 통제되면서 시중은행과 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기술금융 등의 실적을 놓고 참석자들에게 공개 칭찬을 했다지만 공공기관 해제를 바라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열쇠를 쥔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의 휘하라서 인사 등을 맘껏 주물럭거릴 수 있고 무엇보다 정부 배당액의 40%나 되는 알토란 같은 곳을 놓아줄 기미가 없다. 관료들에게 은행권의 극심한 경쟁상황은 관심사가 아니다.

23일 정부 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지정제도가 정권에 따라 고무줄처럼 지정과 해제를 반복하면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있지만 위원들은 기재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 시절 기업은행은 정권 실세였던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파워로 산업은행이 공공기관에서 해제되자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으로 빠져나갔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다시 지정됐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시장환경 등을 놓고 볼 때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제도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고 지적한다.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시장경쟁 여부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은행은 공공기관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금융채권을 발행하는 것, 중소기업 영업 비중 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 외에는 일반 금융사와 다른 점이 전혀 없다.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 규제는 지방은행도 45%로 정해져 있어 엄밀히 기업은행만의 차이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함께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산업은행과 비교하면 차이점은 더욱 뚜렷하다. 정책금융공사와 합병해 통합산업은행으로 재출범하는 산업은행은 신기술이나 혁신사업 분야에 대한 지원 및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한다. 민간 참여가 어려운 부분을 커버해 나름의 독점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기업은행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지금까지 산업은행과 '한 묶음'으로 취급돼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될 때도 기업은행은 산업은행과 함께였다. 해제 과정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강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며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공기관 해제부터 재지정까지 논란이든 조명이든 오직 산업은행에 집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장으로 나온 기업은행은 현 정부에서 공기업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다시 공공기관으로 재지정 됐다.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업은행은 임원 선임이나 보수기준, 경영실적평가 등의 대상은 아니지만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사실상 독자적인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

금융당국에 추가로 기획재정부라는 시어머니가 한 명 더 생기면서 예산과 채용 계획을 일일이 승인 받아야 한다. 최근 공공기업 방만경영에 대한 규제 강화로 기업은행은 공공기관 지정 이후 복지가 공무원 수준으로 줄었다. 임원 보수도 업계 최저 수준이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시중은행과 똑같이 경쟁하는 기업은행을 정부는 곳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2011년 24.1%를 시작으로 해마다 20% 이상의 배당을 해왔다. 지난해 배당을 해야 하는 정부기관 17곳에서 정부가 배당 받은 약 3,200억원 가운데 40%에 이르는 1,200억원이 기업은행에서 나왔다.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인 30%에 가까운 배당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0년까지 정부출자기관의 배당을 단계적으로 40%까지 올리겠다는 정부 계획에 따라 배당률을 높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기업은행과 정부의 입장 차가 갈린다. 정부는 기업 배당을 장려하고 나서는 반면 기업은행은 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데다 이듬 해 중소기업 대출 증가분을 감당하기 위한 내부 유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배당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입장이다.

내부에선 대통령이 공개 칭찬할 정도로 권선주 기업은행장을 신임하면서 정작 가장 큰 '민원'은 해결 안 해 준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똑 같이 경쟁하는 금융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괄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며 "자율성을 갖고 영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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