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톤젠드(Charles Townshend). 1725년 8월29일 태어나 1767년 42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사에 두 가지 거대한 흔적을 남긴 영국 정치인이다. 첫번째는 미국 독립을 촉발한 ‘톤젠드법’. 귀족자제라는 배경을 업고 23세에 의회에 진출한 뒤 소장파의 리더로 이름을 날릴 때 발의한 법이다. 골자는 식민지 과세 강화. 설탕법ㆍ인지조례 등 식민지에 대한 세금이 번번이 무산되던 무렵 재무장관에 임명되자 법제화를 서둘렀다. 찰스의 돌연사 직후인 1767년 11월 공표. 영국군 주둔비용의 일부를 식민지가 부담하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톤젠드법의 결과는 극력 저항과 보스턴 학살. 관세부과에 항의하는 군중에게 영국군이 총격을 가한 이 사건으로 반영감정이 들끓었다. 본국의 손해가 오히려 크다는 지적에 따라 법은 1770년 폐지됐지만 차(茶)에 대한 관세는 남아 보스턴 차 사건과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두번째 자취는 ‘국부론’ 출간. 30세에 맞이한 미망인이 데려온 의붓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고른 과외선생이 애덤 스미스였다. 글래스고대학 도덕철학 교수의 연봉 200파운드보다 많은 종신연봉 300파운드라는 호조건으로 개인교습을 담당하던 애덤은 예기치 않던 덤도 얻었다. 찰스가 제공한 3년간의 유럽 여행에서 튀르고와 케네ㆍ볼테르 등 석학들과 교류한 것. 여행 직후 애덤은 친구인 데이비드 흄에게 ‘유럽에서 듣고 배운 내용을 책으로 내놓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찰스가 애덤에게 제공한 공짜여행이 ‘성서 이후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는 ‘국부론’을 낳은 셈이다. 국부론과 미국 독립의 공통점은 시대. 둘 다 1776년에 나왔다. 양자간에는 공통분모가 또 있다. 찰스 톤젠드라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