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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팍스 시니카] <상> 대국 발목 잡는 흑막 정치체제

여전한 죽의 장막… 베이징 컨센서스마저 주저앉나<br>시진핑 부재 사태 놓고 당국 '노 코멘트' 일관… 민심·국가 신인도 추락<br>성장모델 전환기 맞아 리더십 위기설 불거져… 글로벌 경제도 직격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등 중요한 행사 때마다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중국이 개혁ㆍ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이를 받쳐줄 선진정치 인프라를 갖추지 못할 경우 향후 지속 가능한 성장은 물론 그동안 쌓아온 경제적 성과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게 논리의 핵심이었다.

물론 그가 주장한 것이 서방식의 다당제나 삼권분립은 아니다. 공산당 일당 독재에서 비롯되는 정치체제의 예측 불가능성과 불투명성을 없애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사법부 독립 등의 견제 기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치개혁이 있어야 공산당 최대의 적인 내부부패를 잡을 수 있고 이럴 때만이 정상적인 시장경제 기제가 작동해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가을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18차 공산당 대표대회를 목전에 두고 원 총리가 우려했던 정치체제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지난 1일 이후 중요한 외빈 면담을 연거푸 취소하며 열흘 넘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도 중국 당국은 '일정 변경'이 있었을 뿐이라며 시 부주석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여전히 '죽의 장막'에 가린 정치는 중국 인민들의 민심이반과 함께 국가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시 부주석의 신병이상설이 확산되면서 18차 당 대회가 일정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5년마다 개최되는 당 대회는 해당 연도 8월 말에 일정이 발표되는 게 통례인데 아직까지 대회 날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 대회에 앞서 8월 말에 25명의 정치국원 회의에 이어 300여명의 중앙위원이 참가하는 핵심 당 간부 회의가 진행돼 정치국 상무위원 등 차기 지도자 인선이 사실상 확정돼야 하는데 시 부주석의 부재로 사전 일정이 소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정치 역사상 최고지도자의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라지만 미국과 함께 주요2개국(G2) 반열에 올라선 대국으로서 이 같은 신비주의 행태는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시 부주석의 교통사고설, 운동 중 허리부상설, 심장병 발생설에서부터 권력교체를 앞두고 계파 간 차기 지도부 지분 싸움을 버티지 못하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느니 하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베이징 정가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지도부 교체를 목전에 두고도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 후진타오 주석의 공청단파, 상하이방과 느슨한 연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태자당(혁명원로 및 고위 당 간부의 자제)파 간의 권력투쟁이 심화하면서 차기 지도부 인선에 합의를 못 봤을 가능성이 있다"며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계파 간 거중조정을 해야 하는 시 부주석이 비밀회의가 이뤄지는 최고지도부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권력교체 과정에서 이상징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경착륙 우려가 나오고 있는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시 부주석을 둘러싼 의혹은 중국 정치의 불가측성을 높임으로써 향후 경제정책 진로의 불투명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더구나 중국 경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1980년대 초 개혁ㆍ개방 이후 견지해온 현재 국가 주도의 수출ㆍ투자 중심에서 민간 주도의 내수 중시로 30년 만에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중장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내수부진 등 중국 경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국가 주도의 시장경제라는 중국 특유의 발전 모델,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전환기를 맞아 리더십 확보가 절실한데도 오히려 정치체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설사 시 부주석 사태가 해프닝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중국 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는 실추된 상황이다.

사실 이들 정치계파 간 싸움은 3월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차기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시되던 보시라이는 후 주석 등 공청단파가 주창하는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개혁에 맞서 국영기업을 활용한 사회 재분배 정책 등을 실시하며 경제발전 모델에서 대립각을 세워왔던 중국 좌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보시라이의 심복이던 왕리쥔의 미 영사관 망명 사건이 보시라이 실각의 단초가 됐지만 그 기저에는 태자당ㆍ상하이방이 지원하는 보시라이 좌파 경제 노선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후 주석의 공청단파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건 발생 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보시라이의 처벌 수위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들 계파 간 싸움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개혁ㆍ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고속 경제성장기에는 베일에 가린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빠른 합의 의사결정과 정책집행을 통한 고효율 정치가 여론수렴과 선거를 거쳐야 하는 서방식 정치보다 우세를 점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저성장기의 성장 모델 전환 시대를 맞아 개혁과 변혁이 절실한 지금은 구중궁궐식 정치의 불투명성과 불가측성이 중국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중국의 권력투쟁이 지도부의 리더십 위기로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초조하게 베이징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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