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사법부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있다.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으로 시작된 뉴스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향판(지역 법관)과 향검(지역 출신 검사)까지 등장하면서 사법 시스템을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았다. 처음부터 균형이 맞지 않는 저울을 가지고 사법정의를 운운한다는 것이 우리 국민이 가진 사법 감정이다. 저 멀리 있는 법에 분노하고 좌절해 자위권 차원에서 스스로 나서는 사적보복을 생각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대법원은 제도개선을 통해 문제가 된 향판제도나 노역형에 대한 양형기준을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땜질 정도로 끝날 사법의 위기가 아니다. 당장 국정원의 간첩 정보조작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개인 신상정보 유출 의혹 등 국민들이 예의 주시하는 사건이 줄줄이 대기해 있다. 검찰은 국민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명명백백한 사건 규명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근대 사법 시스템은 근대 민주국가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사법은 입법·행정과 함께 국가를 이루는 3대 골조다. 근대 민주국가는 국민이 스스로 만든 법을 국민이 스스로 지키겠다는 약속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국가가 법을 지키라고 하지만 국민이 법을 믿지 못하겠다면 중대 위기다. 찔끔찔끔 고칠 게 아니라 전체를 확 뜯어고쳐야 한다. 법원과 검찰 등 사법 시스템에 속한 모두의 치열한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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