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사에 쌍용자동차는 기쁨보다는 아픔을 더 많이 아로새기고 사라진 회사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1954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로 출범한 쌍용차는 신진자동차·동아자동차를 거쳐 쌍용그룹이 1986년 인수해 1988년부터 두 마리 용을 품었다. 쌍용차는 지금은 대표 차종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국내에 생소할 때 코란도를 앞세워 한국형 SUV 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10년이 안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쌍용그룹 몰락의 한 원인이 됐다. 1998년 이후에는 대우그룹과 채권단, 중국, 인도 기업 순으로 주인이 바뀌며 20년 넘게 적자와 부실기업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쌍용차 근로자들의 눈물로 불리는 ‘노란봉투법’도 중국 상하이차가 ‘먹튀’ 논란 속에 2009년 초 유동성 위기에 처한 쌍용차 경영을 포기하면서 잉태됐다. 대법원은 당시 이뤄진 쌍용차 근로자 153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경영상 긴박한 이유 등 모든 요건을 갖춘 만큼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국에서 기업이 합법적 정리해고를 하는 일은 지금도 미국 등 서방 선진국보다 훨씬 어렵다. 구조조정 5년 후인 2014년 내려진 대법원 결정이 큰 주목을 받은 이유다.
실제 쌍용차 경영진도 노조와 머리를 맞대며 부도 위기에 놓인 회사를 살려보려 애썼다. 그 일환으로 2009년 4월 전체 인력의 37%인 2646명의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2019명은 희망퇴직, 459명은 무급휴직을 수용할 만큼 쌍용차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였다. 당시 정리해고를 앞둔 노동자와 노조는 불법이지만 생존을 위한 파업에 나섰고 ,노사 갈등은 커져 회사에 더 큰 피해를 남겼다.
법원이 2013년 11월 쌍용차 노조원 150여 명에 회사와 경찰에 약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거액의 배상금까지 물어야 할 처지가 되자 이를 가슴 아프게 여긴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돈을 모아 보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법 3조를 완화해 불법파업이라도 노조가 아닌 근로자 개인에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법 개정 청원이 일었고 노조법 3조 개정안은 일명 ‘노란봉투법’이 됐다.
노란봉투법이 이후 여론의 동정을 얻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거대 노동단체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해 파업을 쉽게 하는 노조법 2조 개정안까지 노란봉투법에 포함시켜 홍보전을 벌였다. 선거마다 수백만 노동자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 거들었다.
하지만 원청 기업과 하청 업체 노조가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허용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나 노동쟁의 대상에 기업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공장 이전 등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포함하는 노조법 2조 개정은 한 노동경제 전문가의 말처럼 기업에 ‘핵폭탄’이다. 수천 개 하청 업체를 거느린 삼성전자나 현대차는 엄청난 교섭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빠른 경영 의사 결정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삼성과 현대차의 어떤 해외 경쟁사들도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 않다. 수백 개 하청 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 빅3 기업은 정부가 SOS를 친 ‘마스가’를 위한 미국과 협력에서 폭풍우를 만날 수밖에 없다.
재계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 두 달 만에 노조법 2·3조 개정을 밀어붙이자 울며 겨자먹기라도 진짜 노란봉투법은 수용할 테니 산업 현장에 대혼란을 몰고 올 노조법 2조 개정만은 말아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주한미국상의는 노조법 개정이 한국의 투자 매력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하고 노조 영향력이 강력한 주한유럽상의조차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노조법 개정이 이뤄지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반발하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두 달 ‘사회적 대화’라도 해보자는 재계의 마지막 호소마저 물리치고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미국 순방을 떠나 있는 동안 노조법 개정을 강행할 태세다.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인 것을 노조법 개정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노란봉투법을 미뤄둔 이유는 모른 체 하는 이중성이다. 무엇보다 불법 계엄으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긴 윤 전 대통령에 관한 평가를 여당의 섣부른 노조법 개정이 흔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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