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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기업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의 '금융 컨트롤타워'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금감원은 그동안 금융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실기업 처리와 같은 난제가 생기면 조정자 역할을 맡아왔다. 법이나 감독규정에 명시된 권한만으로는 금융시장 건전성 유지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인식 때문에 금감원은 일정 정도 개입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경남기업 사태로 드러난 금감원의 행적은 조정자 역할을 빙자해 특정 이해관계자 편에 서서 특혜를 준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금감원의 위상이 실추되면서 정작 나서서 진두지휘해야 할 현안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도덕적 권유'와 부당한 관치 사이에서 길 잃어=국내에서는 민간주도의 구조조정 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탓에 당국의 개입 여지가 컸다. 채권금융기관이 이해관계가 엇갈려 우물쭈물하는 사이 법정관리로 가거나 기업이 파산하게 되면 후폭풍이 거세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권단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대기업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는 상황에서 당국의 구조조정 지원사격은 필수적이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도덕적 권유(moral suasion)'나 영국중앙은행의 '런던 어프로치' 등도 실상은 당국의 보이지 않는 개입을 통한 신속한 시장질서 확립의 실례들이다.
시중은행의 구조조정 담당자는 "결국 개입의 여부보다는 방법과 합리성이 문제"라며 "경남기업이나 대한전선과 같이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업까지 시장질서에 반하는 지원을 해주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작 금감원이 산업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과감하게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야 하는 역할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목소리다. 최근 삐걱거리고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대표적이다. 세계 경기 침체와 중국 기업들의 도전으로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자 지난 2010년부터 중견 조선업체들이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성동조선의 경우 5년이 지난 지금에도 구조조정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기는커녕 여전히 돈을 얼마나 더 쏟아부어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조선 업계나 채권금융단 사이에서는 예전과 같은 조선업황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 구조조정 중인 SPP조선·STX조선·성동조선·대선조선 등의 합병 유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당국에서는 '채권은행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견 조선사들에 대한 재편 방안을 내놓고 그에 따라서 구조조정을 해가는 게 맞다"면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금지원은 못 끊게 하면서 뒷감당은 채권은행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손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남기업 역시 대주주의 반발을 뿌리치고 랜드마크72 매각을 서둘렀다면 지금과 같은 법정관리 사태는 막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조속한 구조조정은 뒷전에 둔 채 채권단이 추진하는 대주주 감자와 같은 쓸데없는 일에 개입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정치 외풍에 취약한 수뇌부가 '정치금융' 부채질=이렇게 불필요한 개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외풍에 취약한 금감원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경남기업 사태에서 낱낱이 드러났듯이 금융권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금감원이 정치권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의 독립성 확보에 대한 반성으로 민간 기구로 출범했으나 되레 공무원조직보다 금감원장을 비롯한 임원 인사에 대한 정부 및 정계의 영향력이 커졌다. 과거 일부 금감원 수장의 경우 정치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임명되거나 금감원장을 또 다른 자리로 가기 위한 가교로 삼는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임원들 역시 산하 기관이나 민간회사에 낙하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에 밉보이면 안 된다는 '보신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정치권에서도 금감원을 손쉽게 금융권 민원을 해결하는 창구쯤으로 여기는 의식도 팽배하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좌관이 불러도 국회로 달려가야 하는 게 금감원의 실상"이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위축된 금감원의 위상으로는 제대로 된 소방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건설·조선뿐 아니라 철강·화학업종까지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감독 당국이 선제적 대응에 나설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대기업 부실이 가시화될 텐데 이번 사태 이후 금감원의 역할이 축소돼 적기 구조조정에 실패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투명성 높여 '관치의 정당성' 확보해야=결국 금감원이 금융 컨트롤타워로서의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외풍을 차단해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한국 금융 당국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IMF는 "한국의 금융규제 구조는 정치적 영향으로부터의 독립성, 감독기관의 핵심 임무인 감독의 초점을 흐리는 다양한 책무, 관련 기관 간 강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는 업무 중복 등이 있다"면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투명한 절차와 공정한 방식으로 구조조정 등의 업무를 처리해야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 성공사례를 만들어 금감원의 위상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전직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하이닉스·LG카드·현대건설과 같이 과거 워크아웃 성공사례가 앞으로도 다시 나와서 금감원의 조정자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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