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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은 입을 열어라(사설)

한보부도의 여파로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과 관가에도 엄청난 사정한파가 예고돼 있다. 부실대출의 직접 당사자인 금융권은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문민정부들어 이미 16명의 은행장이 비리혐의로 중도하차했고 그중 5명은 구속됐다. 이번에 얼마나 많은 수의 은행장이 또다시 쇠고랑을 차고 문책을 당할지 알 수 없다.은행장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용의 상징이다. 잇따른 은행장 구속은 그사회의 신용질서가 파탄났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신용이 구멍난 사회에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그처럼 많은 은행장들이 구속되고,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은행의 명예에 먹칠을 했음에도 은행의 비리구조를 시정하려는 금융권 자체의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다. 비리 혐의로 처벌을 받은 은행장들마저 책임회피나 뒷공론만 일삼을 뿐 당당하게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비리구조를 깨뜨릴 체험적 처방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이번 한보사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저마다 책임회피에 바쁘고 뒤에서 전화를 받았느니 뭐니 하며 외압설에 대한 연막만 피우고 있다. 은행장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치적 보호막이 없으면 앉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은행장자리다. 인사권이 정부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은행장들은 자신의 목을 걸지 않는 한 정치권력의 압력을 거부할 수 없다. 무리한 청탁이라도 들어줘야 하고 보호막 유지를 위해 별도의 주머니도 만들어야한다. 그 결과 대출비리 구조가 정착돼 버렸다. 그런 조직이기에 우리사회에서 투서가 가장 난무하는 곳이 금융권이다. 투서 한장이면 은행장이 추풍낙엽 신세가 된다. 또 그같은 구조로 인해 금융비리는 한두 사람의 은행관계자에 대한 인적처리로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한보사건도 벌써부터 그렇게 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비리구조를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이며, 금융계는 이런 수모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금융계가 일어설 때가 되지 않았는가. 금융계가 비리를 금고 속에 묻어두고 뒷공론이나 일삼아 가지고는 신용질서는 결코 바로잡히지 않을 것이고 금융개혁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최소한 한보사건에 연루된 은행장들 만이라도 자신이 겪은 비리사례를 낱낱이 드러내 이 땅에서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것은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일 터이지만 은행이 외압을 견제하고 자율경영으로 가기 위해, 그에 앞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아픔이다. 은행장들이여 입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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