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는 은행은 독과점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를 이용한 예대마진과 수수료 수익이 순이익의 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독과점 환경과 이익구조 덕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을 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은행은 정부의 보호도 받는다. 일정액의 예금을 보장해 줘 뱅크런(예금인출사태)을 막아주는가 하면 도산 위험에 부닥칠 때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붓기도 한다. 은행이 민간영역임에도 과도한 배당 자제를 요구 받고 임원에 대한 높은 임금이나 성과급을 간섭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은행에는 뗄 수 없는 업보인 셈이다.
반 월가 시위가 발생한 후 잠잠해지던 은행들의 탐욕이 다시 한 번 기승을 부리는 모습이다.
◇반 월가 시위 얼마나 됐다고…너도나도 실적잔치=지난해 금융지주나 은행은 높은 예대마진과 수수료이익, 그리고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 매각 차익으로 1조9,930억~4조2,7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많은 이익을 내다보니 주주를 위해 높은 배당을 추진하다가 금융 당국과 마찰을 일으켰고 급기야 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자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배당 논란이 잠잠해지자 은행들은 이번에는 또 다른 비스킷(성과급)을 임직원에게 내놓았다. 위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당장 돈이 넘쳐나니 은행들 스스로 나눠 갖겠다는 심산이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말 기본급 150%의 성과급을 임직원에게 지급했는데 총액 규모는 700억~8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에 질세라 신한은행은 150~300%가량의 성과급(현금과 주식 각각 절반씩 지급)을 두고 노사가 협의에 들어갔다. 인원은 국민은행에 비해 적지만 성과급 지급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한은행 역시 성과급 총액은 국민은행과 비슷한 수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인수를 코앞에 둔 하나은행도 100% 이상의 성과급 지급을 검토하고 있고 우리은행도 6년 만에 성과급 지급을 예정하고 있다.
◇위기 현재 진행형인데…금융 당국 비웃는 은행들=문제는 정부에서조차 "올해는 복합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올해의 경제상황은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번져 부실채권이 늘어날 경우 금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신년사에서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이 하나같이 '내실경영'이나 '리스크 관리'를 강조한 것도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겉과 속은 너무 다른 듯, 은행은 버젓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금융감독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배당부터 성과급 등을 놓고 당국이나 국민의 시선이 좋지 않은 것도 국내 은행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면서 "여러 이유를 막론하고 위기의 경고음이 커진 지금, 실적잔치를 하기보다는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은행의 성과급 잔치가 국민의 박탈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도 "정부 허가를 얻어 사업을 영위하는 은행은 독과점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이익의 대부분도 내국인을 상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번 돈"이라면서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금융업은 판매 후에도 다양한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발생하므로 위기 발생이나 미래 비용에 대비한 체력을 더 쌓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와 이자 감면 등 은행 역시 사회적 책임을 위한 많은 활동을 했다"면서 "직원한테 주는 복지혜택을 가지고 '탐욕'을 운운하는 것은 좀 지나친 간섭이 아닌가 싶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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