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신임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통화정책 전문가다. 신중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당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 대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008년 10월 5.25%던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3.0%로 연거푸 인하했다.
이 총재 내정자는 당시 통화정책 담당 임원으로 정부와 한은 간 조율을 완벽하게 해냈다. 당시 이성태 한은 총재의 마음을 돌려세운 것도 이 내정자였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은은 중앙은행의 독립성(물가안정)을 우선시했는데 이 내정자는 정부와 한은 중간에서 양쪽을 오가며 훌륭하게 설득해냈다"며 "정통 한은(BOK)맨이면서도 새로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균형감 있게 이해한다"고 평가했다.
껄끄러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총재 간 정책 조율에서 실질적인 작업을 해온 것도 바로 이 내정자였다.
이런 이유에서 한은 출신의 차기 총재 후보 가운데서는 가장 유력한 인물로 거론돼왔다.
1977년부터 퇴임했던 2012년까지 35년간 한은에 몸담았던 그는 '정통 한은맨'으로서 한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이 때문에 한은 출신인 이성태 총재에 이어 조직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적임자로 꼽혀왔다.이 내정자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은에서는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 부총재 등 핵심 보직을 모두 거쳤고 현재는 연세대 특임교수를 지내고 있다.
이 내정자에 대한 한은 후배들의 신뢰는 매우 두텁다. "이 내정자의 중앙은행관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이 내정자 지명 소식에 한은이 들뜬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계 관계자는 "내부 통합과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중앙은행상을 정립하는 데 굉장히 유리한 분"이라며 "어려운 시기에 내부의 탄탄한 지지를 받으면서도 불필요한 마찰 없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무리 없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파트너'로 평가되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말 한 일간지 기고에서는 최근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괴리를 보이는 현상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지표 전망과 달리 실제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업가정신 존중,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중수 현 총재의 임기는 오는 31일까지다. 이 내정자는 2012년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 총재 내정자로서는 처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국회는 20일 안에 청문회를 열어 3일 내 심사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2012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 변동사항'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전년 대비 4,572만원 줄어든 14억3,571만원이다. 한은 총재 후보자로 낙하산 인사가 아닌 내부 출신이 낙점됨에 따라 청문회 문턱을 다소 쉽게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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