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습니다. 저는 이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지난 1995년 8월15일, 전후 50년을 맞아 당시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담화의 일부분이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반성'과 '사죄'라는 네 가지 키워드가 모두 담겨 있어 우리로서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의 정석으로 꼽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14일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에 같은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6일 아베 담화 자문기구인 '20세기를 돌아보고 21세기의 세계 질서와 일본의 역할을 구상하기 위한 유식자 간담회'가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침략은 인정하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필요성이 거론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를 그대로 수용해 담화를 발표할 경우 향후 한일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베 담화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우리 정부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포함하도록 전방위 외교를 펼치되 우리의 요구사항이 모두 반영되지 않더라도 회복 기조에 있는 양국 관계를 뒤엎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은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힌다면 전략적으로 넘어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면서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얘기하는 양면 작전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 발표를 계기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담화 자체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한 내용인 만큼 식민지 지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사과를 받아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히려 아베 담화가 우리의 기대 수준에는 부합하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 후회와 반성을 담는다면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은 할 만큼 했으니 한국이 받아줄 차례'라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가 받는 압력이 더 커지고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베 담화 자문기구에서 제안한 다국 간 역사 공동연구를 적극 활용해 한일이 과거사 인식의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아베 담화를 계기로 한일 역사 공동연구 위원회를 발족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에 어떤 피해를 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과거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양국 간 역사 공동연구를 통해 국민들이 가진 역사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대중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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