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기업어음(CP) 발행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다음달 5일부터 장기 CP도 증권신고서 제출이 의무화 되면서 규제 시행 전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일부 한계기업도 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 재무상태 등을 꼼꼼히 살피고 투자해야 된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융투자협회 및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4월 11일까지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CP물량은 44조6,400억원(자산유동화기업어음인 ABCP는 제외)이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발행량인 35조7,200억원보다 24.1% 늘어난 수치다.
특히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CP발행량 증가세가 눈에 띈다. 지난 3월부터 발행된 만기 1년 이상 CP발행 물량은 17조9,900억원으로 같은 기간 7조1,200억원보다 152%나 급증했다.
롯데건설(A2+)은 11일 2년만기 CP 1,000억원과 4년만기 CP 2,000억원 등 총 3,000억원의 장기 CP를 찍었다. 롯데건설이 장기 CP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지난 2012년 3월 2년만기 400억원 CP를 발행한 이후 1년 1개월만에 처음이다. 롯데건설은 하반기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장기 CP발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A1)도 1~2일 이틀에 걸쳐 3년만기 3,000억원, 5년만기 2,000억원 등 총 5,000억원 규모의 장기 CP를 발행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장기 CP를 발행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주로 3ㆍ4ㆍ6개월 만기의 단기 CP만 찍었다. 이 밖에 하이트진로(A3+)도 4일 3년만기 CP로 500억원을 조달했다.
최근 들어 장기 CP 발행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음달부터 장기 CP 발행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CP는 회사채와 달리 발행 주관사의 기업실사나 기관 수요 예측을 거칠 필요도 없고 당일 발행도 가능해 장점이 많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장기 CP가 본질적으로 회사채와 다르지 않다며 동일하게 증권신고서를 심사할 방침이어서 CP로 급전을 조달해 왔던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증권신고서 제출이 의무화되면 인수단 구성과 발행분담금 납부 등으로 조달 비용이 느는 데다 신고서 심사 등으로 신속한 자금조달이 어려워 질 수 있다.
김은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그 동안 회사채 시장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CP를 주로 이용해 왔다"며 "하지만 앞으로 장기 CP가 회사채와 별 차이가 없어지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이 미리미리 장기 CP로 실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장기 CP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기업은 대부분 신용 및 유동성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량 건설사 들이다. 대림산업(A2-)이 2월 3년만기 장기 CP 2,000억원을 발행한 것을 비롯해 대우건설(A2+, 3년 만기 500억원), 삼성물산(A1ㆍ3년만기 2,000억원 ), 두산중공업(A2+ㆍ3년만기 2000억원)이 장기 CP를 발행했다. 최근 어닝 쇼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GS건설(A1)은 올해 1월과 2월 만기가 5~6년에 이르는 CP 8,000억원을 찍었다.
전문가들은 4월 장기 CP 발행량이 급증한 뒤 5월부터는 급속도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은기 연구원은 "그 동안 장기 CP는 회사채 대비 규제를 덜 받았던 데다 신탁업 감독규정 개정 이후 증권사들도 장기 CP를 신탁계정에 편입해 적극 판매하면서 급속도로 규모를 키웠다"며 "5월부터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장기 CP 규모가 4월 정점을 찍은 후 5월부터는 내리막세를 보이고 대신 회사채 시장이 다시 정상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장기 CP 발행량이 급증하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일부 한계 기업이 규제가 본격화 되기 전 장기 CP 발행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에 기업 재무 상태와 차입금 현황을 꼼꼼히 살피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