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에너지 소비도 정체상태를 맞고 있다. 자원 블랙홀인 중국의 경제성장세 둔화와 유럽 등의 경기부진으로 올해 원유 수요는 당초 예상을 밑돌고 있으며 액화천연가스(LNG)도 마찬가지다.
가라앉은 국제 석유시장의 분위기가 에너지 시장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5년 세계 일간 석유 수요 전망을 기존보다 23만배럴 낮춘 약 9,330만 배럴로 하향 조정한 후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지난달 한 국제 컨퍼런스 행사에 참석해 "오는 2050년까지 우리가 모르는 블랙스완(극단적 상황이기는 하지만 한번 발생하면 큰 여파를 내는 사건)이 발생하고 (석유에 대한) 수요가 전무해지는 것은 아니냐"며 원유 수요에 대한 불안감을 표명했다. 지난 2007년 석유 대기업 엑손모빌은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평균 1억1,700만배럴 수준으로 성장하는 시점을 2030년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전망에서는 해당 시점을 2040년으로 미뤘을 정도로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발 악재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중국 석유경제연구원은 올해 중국의 원유 소비 증가율이 3%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인 3.3%에 비해 낮은 것이다. 연구원은 "앞으로 수년간 중국의 원유 소비 증가는 연 2~3%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금융협회(IIF)도 지난주 말 보고서를 통해 올해 중국 경제성장 둔화를 예상하면서 국제유가에 대해 "올해에는 2014년보다 40% 하락해 배럴당 62달러50센트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제유가가 과거처럼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이달 초 석유시장 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약 69%의 응답자가 올해 평균 유가 전망치를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점치기도 했다.
LNG 시장 역시 사정이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글로벌 경기둔화 여파로 신흥국 등에서의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이로 인해 LNG 수송 수요마저 둔화할 정도다. 23일 블룸버그통신은 노르웨이 선박 중개업체 피언리스의 분석을 인용해 "전 세계 LNG 수송선단의 5%가(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다"고 전했다.
석탄시장의 사정은 더 나쁘다. 경기부진의 여파뿐 아니라 환경규제와 기술혁신의 악재까지 겹친 탓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경기회복 호재에도 불구하고 청정에너지 등 대체동력원에 밀려 향후 10년간 수요가 7억5,000만톤 감소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나마 중국이 석유업계의 기댈 곳이었으나 이마저도 경기둔화로 과거와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수요약화는 가격하락으로 이어져 국제 석탄 가격은 지난해 톤당 최고 60달러대에 이르던 것이 현재는 40달러대 초반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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