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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구직자의 거짓말


한 젊은이가 산책을 하다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 싶어졌다. 수중에는 한푼 없는 상태. 그럼에도 당당히 악기점에 들어가 돈 많은 귀족의 심부름을 왔고 피아노를 사기 전에 시연을 해보겠다며 한참 동안 연주했다. 나오면서는 "며칠 후 사러 오겠다"는 말까지 남겼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그의 이름은 로베르트 슈만. 후에 독일 낭만파 작곡가로 명성을 날린 그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앞에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의든 악의에 찬 것이든 남녀노소, 동서고금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되는 게 거짓말이다. 180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영국군에 포위된 몰타의 프랑스 수비대 병참장교의 편지를 위조해 전황을 허위로 전파한 것은 국민에게 불리한 전세를 알리기 싫어서였다. 이탈리아의 지오반니 팔라투치가 유대인 학살에 적극 협력했으면서도 그들을 구한 것처럼 떠벌린 것은 전범 처벌을 피하기 위한 가면이었다.

△차마 거짓말이라 부를 수 없는 것도 있다. 가난했던 시절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음식을 더 먹이기 위해 항상 '나는 배가 부르니 너희나 많이 먹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 앞에 감히 이 단어를 꺼낼 수 없다. 회복 불능인 줄 뻔히 알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 앞에서 "곧 완쾌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의사의 거짓말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이처럼 가난과 고통 앞에서 거짓말은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되기도 한다.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구직자가 면접을 볼 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연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2010년만 해도 '오래 전부터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다'가 1위였지만 3년 만에 더 기업친화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으로 바뀌었다. 공식 30만명, 비공식 100만명에 달하는 청년백수시대에 직장을 구하기 위해 무슨 말인들 못할까 싶다. 고대 로마시대의 풍자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고통은 천진난만한 자에게도 거짓말을 강요한다"고 했다. 미래를 꿈꿔도 모자랄 우리 젊은이들이 억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어야 하는 비애를 놓고 어느 누가 거짓말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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