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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X볼 축구' 닮은 한국 외교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축구에 'X볼'이라는 게 있다.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찬 공이 골대를 훌쩍 넘어 어이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경우 흔히 쓰는 속어다. 힘겹게 상대 골대 앞까지 치고 들어가 완벽한 기회를 잡고도 결국 어이없는 실축으로 한숨을 자아내게 만드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재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우리 정부가 벌이고 있는 힘든 경제·정치 외교를 보자면 한국 축구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안 들어가도 골대 안으로만 차 넣으라고 간절히 바라지만 'X볼'만 차고 있어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사드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너무도 직설적이고 시원한 답변에 중국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중국 관영언론은 '조주위학(助紂爲虐·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일을 한다)'이라는 강한 말로 분명한 반대 표시를 했다. 심지어 미사일방어체계(MD)가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라는 경고까지 보내기도 했다.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웠을까. 지난 16·17일 연이어 방한한 미국과 중국의 외교차관보에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논리로 줄타기를 했던 우리 외교정책은 순식간에 무장해제돼 버렸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방한 전후 기자들과 만나 사드에 대한 중국의 의견을 분명히 전달하며 언론플레이를 했고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제3국(중국)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의아하다"며 맞받아쳤다.

사드·AIIB 등 정작 한국은 묵묵부답

서울 한복판에서 미중 외교관이 사드를 두고 공개적인 충돌을 벌이는데도 한국 외교부는 묵묵부답이다. 하긴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나마 이제까지 취해온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전략은 차라리 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중국, 안보와 경제의 충돌에서 여론을 적절하게 활용한 전략은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고 대안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 경기에서 그렇듯 똥볼은 타이밍을 정말 잘 맞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북한은 핵보유국이고 사드는 필요하다"는 발언과 유승민의 사드 공론화는 번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김 대표의 발언 이후 중국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반응은 번지는 불길만큼 뜨겁다. "러시아까지, 주변국이 반대하는 사드 배치를 하려는 한국의 의도가 뭘까"라는 말은 그래도 양반이다. '혐한 감정'까지 드러내며 한국 상품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더해지며 이제 우리는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은 전략의 부재로 시간에 쫓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베이징을 방문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에는 여유가 있었다. 중국 측과 조건 등을 놓고 협의 중이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원칙적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가입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믿음뿐이다. 어떤 조건, 문제를 협의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가입을 선언하자 사실상 마감에 쫓기는 분위기다. 아예 AIIB 홈페이지는 한국의 가입을 기정 사실화하며 한국을 가입국으로 올렸다가 내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가입 주도권은 이미 중국에 넘어가 버렸다. 일본은 AIIB 가입으로 최대한 중국과 흥정을 하고 있다. 가입시기도 중국이 정한 데드라인인 3월 말이 아니라 6월로 미뤘다. 겉으로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하지만 AIIB의 운영체제·지분배분 등에서 최대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겠다는 속셈이다.

주도권 쥐고 제 목소리 내야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 한국에 대한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진다. 드러내놓고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중국인의 관습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다. '사드와 AIIB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일부 매체의 질문에 올라오는 중국인들의 댓글은 흉폭스럽다.

지난해 중국에서 779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만들어낸 기업들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환상적인 발리슛을 바라지는 않는다. 제발 'X볼'만은 차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홈그라운드에서 남의 경기를 구경하며 더 이상 주전자만 들고 다니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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