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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육성·감독 같은 곳서 맡다보니 둘다 제대로 안되고 규제에만 몰두
제도개선과 병행 직원 인식 전환도 소비자 보호 강화는 세계적인 추세
금융소보원 독립 조직으로 개편을
세계적인 금융허브인 영국은 공동체적 전통에 따라 자율규제가 발달해온 곳이다. 영국의 금융감독 당국은 검사의 방향도 컨설팅으로 잡아 금융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게 시중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투명하고 원칙을 중요시하는 행정절차는 예측이 가능하다.
2007년 노던록은행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시스템 전반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제가 없어 중앙은행(영란은행)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감독체계가 바뀌었지만 애초부터 시장 친화적인 면이 크게 부족했던 우리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은 시장 육성과 규제의 균형점을 잃었다.
금융정책 및 감독기구 간 역할이 헛갈리고 중복되면서 시장 친화적인 감독은커녕 시장의 혼란만 부추긴다. 금융사는 중복규제에 시달리고 진흥정책 미비로 저금리 시대에 적합한 먹거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 및 권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는 금융감독의 철학 부재와도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감독기구 개편이 있겠지만 하드웨어 측면의 수술뿐만 아니라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한 고민에 맞춰 소프트웨어 부분의 감독 개편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독 중복 문제 해결 필요=우리나라는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같이 한다. 쉽게 말하면 산업을 키우는 것과 규제를 같은 곳에서 한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제대로 되지 않거나 규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장 입장에서는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다. 저축은행이 대표적이다. 과거 진흥책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자 당국은 규제에만 몰두하고 있다.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저축은행은 사실상 고사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역할이 겹치는 부분도 있다. 지난해 8월에 있었던 농협과 신한ㆍ우리은행의 가계대출 전면중단 사건은 금융위 당국자가 시장관계자들을 불러다 한 얘기에 대해 은행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발생했다. 예전에는 금감원이 맡았던 일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위가 직접 시장과 접촉하다 나온 일이다. 은행은 은행대로 사업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소비자는 골탕을 먹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가계부채ㆍ하우스푸어 대책 등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상황은 다르지만 삼성이 글로벌기업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규제권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의 금융감독체제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지만 금융시장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체제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도 금융정책은 재무부에서 담당하고 감독은 독립된 기관에서 맡고 있다.
김홍기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본질적으로 상충한다"며 "동일 기관이 금융정책과 감독을 함께 하면 정책적 목적을 위해 감독 기능이 사용되거나 금융소비자 업무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했다.
제도 개선보다 감독기관에 있는 직원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 없는데 아직도 "우리가 옳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이 안 변하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소비자보호 강화는 필연=금융감독 체계를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소비자보호다. 시장은 생산자(금융사)와 소비자(고객)로 구분된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얘기는 금융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적합한 정책을 펼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감독 당국은 지나치게 금융회사 위주의 일을 해왔다. 금융사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저축은행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후순위채 발행을 허용해줬던 것은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돌아왔다. 금융위기 때만 해도 당국은 금융사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이자마진을 늘려주는 것을 용인했다. 논란이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증권사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채권 수익률담합, 생명보험사의 이율담합 제재는 감독 당국이 지나치게 금융사 편만 들어왔다는 말이 나오게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는 세계적으로도 대세다. 시장 친화적 감독에도 부합한다. 우리나라도 5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했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게다가 보호처는 금감원 아래에 있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독립된 조직의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만들어 소비자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법령 재ㆍ개정이나 검사, 징계는 금감원에서 하되 보호원에서는 분쟁조정과 징계요구권 등을 나눠 가지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금리 극복, 해외 진출에도 도움 돼야=저금리ㆍ저수익 구조는 이미 금융사의 목을 죄고 있다. 당국은 금융사가 이를 풀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후상품 같은 신상품 개발규제를 풀고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 진출은 저금리와 사업 다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발전소 플랜트 금융의 경우 연 10~15%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다만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분투자를 포함한 금융지원이 필수인데 금융 당국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분투자의 경우 리스크가 높기 때문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당국이 큰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게 문제다.
독립성 보장 제도적 장치 마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