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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삼성물산 주총일에 '삼성'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삼성'은 어떤 존재인가.

한해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1에 이르는 매출(302조원)과 50만명의 고용인원, 세계 10대 브랜드 가치 기업….

지금은 쇠퇴한 핀란드의 노키아를 제외하고 이런 화려한 수치를 자랑하는 기업은 아마도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도식적 계산만으로 삼성을 정의하는 것은 협소하다. 삼성에는 한국인의 다양한 정서적 색채가 녹아 있다.

물론 국민 대다수의 가슴에 담겨 있는 것은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한국의 간판기업이라는 자긍심이다. 국제무대에서 삼성이 가진 힘은 생각을 뛰어넘는다. 휴대폰과 TV뿐 아니라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 등 내로라하는 마천루에도 삼성의 손길이 닿아 있다.

세계에서 배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곳 중 하나도 삼성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하는 첼시의 가슴에 새겨진 삼성 로고는 밤새워 TV를 본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긍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중국 매체가 '삼성을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서 "한국인은 살면서 세 가지를 피해갈 수 없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과 세금 그리고 삼성"이라고 한 것은 시중의 우스갯소리를 전한 것일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삼성의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국제무대의 힘 국민에 자긍심 줘

하지만 삼성의 이런 모습은 때로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독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어느 기업보다 힘겨워했다.

지난 1938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내세운 경영철학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이 같은 이념적 틀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 굴지의 MBA스쿨에서 삼성의 오너경영을 조명하며 '기업가정신의 교과서'라고 칭송하는 것도 그들의 경영이념을 인정한다는 뜻일 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삼성에 들이대는 잣대는 가혹하다.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삼성=1등'이라는 이미지의 뒤편에는 어떤 흠결도 안 된다는 무관용의 인식이 담겨 있다. 그것이 질시(嫉視)의 표현이더라도 그조차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삼성의 숙명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논란은, 비약일 수 있지만 그 연장선일지 모른다. 이번 문제의 출발은 기업의 기본인 주주가치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합병비율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기초적 판단 문제가 싸움의 주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악명이 높다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그것만 보고 삼성을 공략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순진무구하다. 헤지펀드들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은 기업이 그 사회에서 차지한 위치와 약점, 여론의 흐름까지 샅샅이 파악한 후 행동에 옮긴다. 삼성에 대한 일부의 반감은 엘리엇에 매우 유용한 재료였다. 그리고 오류로 점철된 논리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옳고 그름을 논하지만 엘리엇의 이런 속성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본질로 돌아가 주주가치만 놓고 봐도 그리 어려운 '고차방정식'은 아니다.

기업 가치판단의 핵심인 미래 성장성을 보자. 물산의 한 축인 건설은 중국의 추격으로 한계에 내몰렸고 상사 부문은 저유가로 추가 이익이 쉽지 않다. 성장을 멈춘 조직이 순식간에 도태되는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 이번 합병은 결국 생존을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반면 합병을 통해 키워갈 바이오 사업은 매력이 매우 크다. 가라앉는 배에 머무를지 새로운 배로 갈아탈지는 우문에 가깝다.

헤지펀드에 놀아나게 해선 안돼

국가 전체의 그림을 보면 답은 더욱 뚜렷하다. 지금 우리 제조업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업종이 부활한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시기에 한국의 간판기업이 돈놀이에 급급한 헤지펀드에 놀아난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22년 전 하노이, 그리고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캄보디아 순방을 함께한 기자는 많은 절망을 느꼈다. 길거리에는 일본 차가 가득했고 우리 기업은 입간판조차 찾기 힘들었다. 우리 기업들은 그런 척박함을 이겨내고 세계무대의 중심에 섰다.

그 소중한 자산을 엘리엇이 벌이는 투기의 굿판에 내던지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절망의 덤불로 뛰어드는 일이다. 17일 주총은 그래서 삼성이 아닌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날이다.

/김영기 산업부장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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